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쓰면서 글 한 편을 끝낸 뒤에 남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AI로 초안을 받아도 이 문장이 왜 제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어디까지 고쳐야 하는지 판단할 일은 남습니다. 지난번에 고친 표현을 다음 글에서 또 고치고, 덜어냈던 설명을 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글은 끝났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기준은 남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헤르메스의 차이는 초안을 만드는 순간보다, 그 뒤의 판단을 다음 글에 어떻게 남기느냐에서 드러납니다.
기준을 남기는 방식
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쓰면서 달라진 것은 이 지점입니다. 글을 고친 뒤의 모든 피드백을 쌓아 두는 대신, 다음 글에도 필요한 것만 남깁니다. 저는 오래 갈 취향은 메모리에, 반복되는 작업 순서는 스킬에, 원고와 근거는 파일에 나누어 둡니다. 그래서 다음 글은 빈 화면에서 시작하지만, 제가 남겨 둔 기준을 다시 확인하며 이전 글의 판단을 전부 잃지 않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끝까지 판단하는 일
이 방식에서는 제가 끝까지 판단합니다. 헤르메스가 수정 내용과 작업 흐름을 이어 줄 수는 있지만, 어떤 문장이 제 목소리인지, 어떤 피드백이 다음 글에도 필요한지는 대신 결정하지 못합니다. 한 번의 수정은 원고 안에 남기고, 제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 표현이나 설명이 길어지는 방식처럼 여러 글에서 반복된 기준만 골라 남깁니다. 그래야 쌓인 기록이 글을 무겁게 만들지 않고, 다음 글의 기준이 됩니다.
다른 눈으로 읽는 과정
글을 다 쓴 뒤에는 이렇게 남겨 둔 기준이 실제 원고에서도 작동하는지 다른 눈으로 읽어 봅니다. 쓴 사람은 자신의 설명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독자가 어디에서 멈추는지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독자의 자리에서 글을 읽고, 다시 편집자의 자리에서 반복과 어색한 흐름을 살핍니다. 글을 쓰는 일과 읽는 일을 나누면 혼자서는 지나쳤을 빈자리도 보입니다.
다음 글의 시작점이 달라집니다
제가 헤르메스에서 더 크게 느낀 가치는, 더 많은 글을 대신 쓰게 하는 기능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의 요청에 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내가 고른 기준과 수정의 이유가 다음 작업에 다시 쓰이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좋은 AI 초안은 오늘의 글을 앞당깁니다. 헤르메스는 여러 글을 거친 뒤에도 내가 어떤 글을 쓰려 했는지 잊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헤르메스 에이전트는 글쓰기 도구라기보다, 글을 쓸수록 내 판단을 남기고 그 판단을 다음 글로 잇는 작업 방식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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