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온두라스도 똑같이 당했다. 숙소에 돌과 죽은 쥐가 날아왔다. 편파판정 시비 속에 게임도 0대3으로 내줬다. 온두라스 원정 응원단도 2명이 맞아죽고 차 150대가 불탔다. 분노한 온두라스 정부는 교역을 끊었다.
국교가 단절되는 대립 속에서도 경기는 계속됐다. 월드컵 본선 진출팀을 가려야 했기 때문. 1969년 6월27일 제3의 장소인 멕시코시티에서 관중보다 경찰이 더 많이 깔린 가운데 열린 경기의 결과는 3대2. 엘살바도르의 승리였다.
연장전에 터진 결승골은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양국 정권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맹목적 애국심을 부추겼다. 결국 7월14일 엘살바도르 군대가 국경을 넘었다. 온두라스도 공수부대를 후방에 낙하시키는 교란작전으로 맞섰다. 끝까지 가겠다던 양측은 미주기구의 중재로 휴전에 들어갔지만 불과 닷새 만에 1만5,000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온두라스인 15만명이 집을 잃었다.
엘살바도르의 끝도 좋지 않았다. 온두라스에 대한 수출길이 막혀 경제난에 시달렸다. 본선 성적도 헝가리전 0대10을 포함해 3전 전패. 혼란해진 엘살바도르는 군부 쿠데타로 다시금 거덜났다. 군사정권이 가톨릭 주교까지 살해하는 영화 ‘로메로(1993년 개봉)’의 배경도 이때다. 축구에 대한 과도한 열정이 증오와 파멸로 증폭된 셈이다.
자료출처 : 서울경제 "축구전쟁 (엘살바도르 vs 온두라스)"얼마전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 된 내용입니다.
1969년 7월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월드겁 예선전을 통해서 전쟁까지 불사하게 만들었다.
2년 후 두사람은 멕시코 월드컵 주전선수로 발탁됐다. 당시 모국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실력은 비슷했다. 따라서 월드컵 본선진출을 위한 최종 예선에서 맞붙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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