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펴보면 어떤 것을 하는데 그 중간을 지키기 위한 내용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라 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저 또한 그것을 모두 알리는 부족 하지만 두분의 머리글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를 각각 살펴 보겠다.
저자 장정일님의 '공부' 에서 바라보는 중용이 주는 의미이다.
중 용이 미덕인 우리 사회의 요구와 압력을 나 역시 오랫동안 내면화해 왔다. 이 말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모난 사람, 기설을 주장하는 사람, 극단으로 기피받는 인물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언제나 '중요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 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한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 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장정일의 공부' 책에서 발취 머리말 부분(4p~5p)
아래는 저자 박민영님의 '행복한 중용'에서 바라보는 중용의 개념이다.
그 이후 20대의 나는 진취적이다 못해 독단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피는 끓었고, 성격은 급했으며, 세계를 바라보는 눈은 단순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좌충우돌로 인해 나는 무릎은 여전히 성할 날이 없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모든 일에는 적당한 것, 알맞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사는 일에는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중용' 이 그렇다. '중용' 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진면목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중용은 옛 덕목이다.
중용이 단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덕목 중의 하나가 아니라 생활의 중심 원리이며, 깨우침의 원리이고, 무엇보다 인시긔 바른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저자 박민영님의 '행복한 중용' 에 발췌 (프롤로그에서 발췌)
저자 장정일은 중용과 저자 박민영의 중용 얼뜻 본다면 중간을 의미 하고 그런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중용이지만 각자 책에서 말한 중용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중용은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공부를 통한 중용을 지키는 저자 장정일님과 생활속에 미덕을 지켜가기 위한 저자 박민영님의 이야기가 각각 또 다른 재미를 가지게 한다.
필자의 중용은 두분이 책에서 말하는 각각의 중용을 지켜가고나 노력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