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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김홍신의 대발해>에 '독도' 를 언급한 부분이 있어 다시 봤다. 처음 읽었을 때는 쌍둥이 섬이라 불리었던 것과 발해시대에는 우산도라고 불리었다고 그냥 흘려 읽었다.

당시 독도는 신라땅이었다.
독도는 우리땅 가사 일부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 6월에 우산국(于山國)이 항복하고 해마다 토산품을 바치게 되었다.>
대발해 책에서는 당시 일본에 첫 사신을 보내는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이 책은 역사소설이다. 즉,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독도에 대한 설명부분 또한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했던 것이다.



발해는 696년에 세워졌다.
발해가 일본에 첫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한국사연표(동방미디어 刊, 2004)를 참고.
물론 이 자료는 발해고,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등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모든 문헌사료를 취합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자료이다.
이 책의 p.72에 보면,
"발해, 고인(高仁) 등을 일본에 보내어 통빙(通聘)하고자 하였으나 겨우 고제덕(高齊德) 등 8인만이 일본 조정에 도달"이란 기록이 있다.
이 때가 정묘(丁卯)년, 즉 727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 일은 조선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에 의해 쓰여진 발해고(勃海考)에 저술되어 있습니다. (참고:발해고/유득공 지음, 송기호 옮김/홍익출판사, 대발해10권 254페이지에 보면, 1차 자료 안에 '발해고'가 있고, 257페이지에 2차 자료에 표시되어 있다.)


<김홍신의 대발해> 역사소설에서 독도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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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소개된 내용 발췌


"저기 섬이 보입니다."
뱃머리에 서 있던 사공이 소리쳤다. 과연 꿈인 듯 생시인 듯 가물가물 섬이 보였다. 뾰족한 두 개의 섬이 형제처럼 마주 보고 있었다. 쌍둥이 섬이었다.
"쉬었다 가야겠다. 배를 대라!"
지쳐 쓰러진 사공들을 데리고 더 전진할 수 없었다. 사신 일행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쌍둥이 섬이 가까워지자, 고인이 도사공 박천파에게 물었다.

"저 쌍둥이 섬은 신라 땅이냐?"
"그렇습니다. 신라 땅 우산도(독도)라 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섬입니다. 고기잡이 배들이 풍랑을 피해 잠시 쉬어 가는 곳입니다. 원래는 우산국에 속했으나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가 정복하여 신라 땅이 되었습니다."

"만경창파에 외롭게 홀로 있으면 얼마나 고독하겠느냐. 저렇게 쌍둥이처럼 동서로 나뉘어 마주보고 있으니 그나마 슬퍼 보이지 않는구나."

가 까이 다가가니 먼발치에서 본 것처럼 작은 섬이 아니었다. 우산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져 있고, 주변에 무수한 암초가 있는 화산도였다. 동도와 서도 사이에는 폭 4백 척은 족히 넘고 길이가 1천 척쯤 되는 수도가 있어 바다고기들이 유유자적하게 노닐었다.


"천하가 신비롭구나. 수백 리 떨어져 외롭고, 모진 바람과 풍랑이 휩쓸어 고독한 섬에 무슨 조화로 이리 어여쁜 꽃이 피고 새가 운다는 말이야. 어딘가 샘물이 있을지 모르니 찾아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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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2호가 찍은 것으로 동도와 서도 - 출처:동아일보



역사가, 진실이 독도는 우리의 땅이라는 흔적이 살펴볼려고만 하면 곳곳에 많다. 이렇게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우리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옆나라에 행태에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독도는 우리땅임이 분명하다.


김홍신의 대발해 (전10권) 상세보기
김홍신 지음 | 아리샘 펴냄
장편소설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의 역사 장편소설 『김홍신의 대발해』 세트(전10권). 작가가 1998년 국회의원 시절부터 8년여에 걸쳐 구상 집필한 이 책은 전10권으로 완간되었다. 소설은 668년 고구려의 멸망에서부터 698년 고구려 유장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926년 멸망하기까지 발해국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는 고구려의 세배 넓이로 확장하는 등 당나라




지난 주말 대조영 드라마는 불과 5천군사로 20만이 되는 이해고 대군을 물리쳤다. 물론 말갈족의 도움을 받아지만 말이다. 아무리 좁은 계곡이라도 뚜렷한 전술전략도 없는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홍신의 대발해' 책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천문령 대첩' 이라고 나온다.
결국 천문령 전투의 대승으로 대조영은 동모산에 대발해를 세우게 된다. 천문령 전투의 대승이 없었다면 당나라는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자 했을 거며, 많은 전력 손실 때문에 당나라도 전투보강할 필요가 있었고 대발해와 화의를 맺게된다.

책에서는 '천문령 전투'를 '천문령 대첩' 으로 표현 할 정도로 그에 대한 기록이 잘 되어 있다.
대조영은 군사 7만으로 40만이나 되는 이해고 군사와 천문령에서 맞서게 된다. 엄청 많은 당나라군사는 인해전술로 연전연승하게 되며 최후의 전투까지 책에서는 잘 설명 되었다.

책에서는 천문령 전투가 있기 전에 걸사비우와 대중상의 죽음이 있었다. 걸사비우는 이해고에게 죽음을 맞게 되며, 대중상은 노환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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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조영



## 대사달이 이해고를 속이기 위해 장계취계하면서 대조영은 물론 손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게책을 짰다. 그로인해 이해고는 대사달에게 속아서 엄청난 전투력 손실을 범했다. 그 동안 연전연승을 거듭하던 당나라군이 대패했으며 전사자와 부상병을 합쳐 4만여명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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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를 시작한 지 아흐레째 되는 날에야 당나라 대군은 겨우 천문령 영마루를 차지했다. 쫓고 쫓기는 전투는 밤낮이 없었다. 양쪽 진영의 군서들은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적군이 기습해 올지 알 수 없는 전황에서 밤자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이해고는 천문령 상봉을 취했으니 고구려군을 토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대조영이 이해고를 물리치기 위해서 '성동격서' 전술은?
이곳은 적에게 너무 쉽게 노출되어 막다른 골목 땅과 같다. 뒤로 물러서면 낭떠러지 아래에 깊은 계곡이 있고, 앞에는 초원이 펼쳐져 있어서 인해전술로 달려드는 적과 응전하기 벅찬 곳이다.
결국 버랑끝 전술로 더 이상 도망가거나 생사결단을 하려고 한다면 생존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대조영 드라마에서 대중상의 죽음과 깊은 계곡에서의 이해고와의 싸움은 고구려 군사들에게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게끔 한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그러나 '김홍신의 대발해' 에서는 대중상의 죽음 노환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때가 천문령 전투 중간에서 있었던 일이라 어느정도 일치 한다고 한다.

## 벌 끝자락의 계곡에는 수많은 군사가 한꺼번에 도주할 수 있는 도수로를 만들고, 계곡을 건너 가파른 벼랑에도 진입로를 곳곳에 만들었다. 벼랑 뒤에는 돌과 바위, 통나무와 시초더미를 무수히 깔아두었다. 부녀자와 노인 중에 힘을 쓸 수 있는 자에게는 바위와 통나무 굴리는 법을 가르쳤다.

## 천문령을 넘은 30만 대군과 천문령을 돌아온 5만 군사를 합쳐 35만영이나 되는 군사를 거느린 이해고는 개활지 너머 계곡을 끼고 진을 친 고구려군과 조우했다.

이윽고 당나라 대군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해고는 독화살을 가진 궁노수들을 따로 거느렸다. 선봉의 혈전은 치열했다. 먼저 공격한 고구려군의 기세는 매섭다 못해 사나웠다. 양쪽 군사들은 도망갈 데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서로 밀리고 밀리는 전투는 한 경(2시간)쯤이 지나서야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사납게 공격하던 고구려 진영에서 퇴각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당나라 군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에 고구려군이 다시 공격해왔다. 이번에는 말타고 활쏘기에 능숙한 도탕대가 적진 가까이 달려들어 마구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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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격하라!" 이해고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불붙은 시초가 무수히 글러떨어졌고 계곡에 있던 마른 풀에 불길이 번졌다. 아수라장이었다. 발석거에서 날아온 돌덩이가 당나라 군사들 머리 위로 마구 떨어졌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진동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이해고는 퇴각령을 내렸다.

## "추격하라!" 대조영의 호령을 따라 복창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졌다.
함성이 계곡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전군의 생사경을 쥐고 있는 대장군이 선봉에서 공격하자 모두 용기백배했다. "적을 섬멸하라!"

## 잇따라 불화살이 또 하늘을 수놓고 계곡으로 쏟아졌다. 불바다가 되었다. 아우성치는 소리와 비명이 뒤엉켜 계곡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퇴각하라!"
대조영의 장령이 떨어졌지만 계속으로 진격했던 군사들은 도망치지 못했다. 당군은 밀물처럼 능선을 타고 밀어닥쳤다. 천하없는 전술전략이라도 막을 수 없는 기세였다.

## 장검을 치겨든 대조영이 적진을 향해 말을 달렸다. 창검 든 기병들이 좌우로 벌려 뒤따르며 진격하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장면이 이어졌다. 아수라장이라 했던가, 피가 튀고, 피가 날리고, 피가 흐르고, 피가 고였다. 도망가는 적의 무리는 저희들끼지 밟고 뭉기며 혼이 빼앗긴 듯했다.

## 당나라 기병들은 좁은 비탈길에서 자꾸 헛디디느라 운신을 못하고 벌벌 떨었다. 당나라 군사들은 짧은 창을 지녔다. 초목이 무성한 곳에서는 끝이 갈라진 자루 짧은 창이 유리했다.
당나라가 군사들은 많고 많았다. 죽고 또 죽고, 다치고 또 다쳐도 한없이 많았다.

## 당나라 장수들은 말을 탄 채 물이 흐르는 계곡이건, 쐐기풀이 흐드러진 들판이건, 수목이 우거진 산속이건 가리지 않고 도망쳤다. 대조영이 몸소 검을 휘두르고 활을 쏘며 적을 압박하자 사기충전한 군사들은 함성만으로도 적을 능욕할 지경이었다.

## 고구려군은 이른 아침에 적의 선제 공격을 받아 응전하며 무려 다섯 경(10시간)이 넘을 때까지 쉬지 않고 싸워서 당나라 대군을 물리쳤다.
병장기를 버리고 몸만 빠져나간 군사가 몇만 명이요, 이해고를 따라 퇴각한 군사 또한 수만 명이었다. 사로잡힌 당나라 장졸이 무려 1만영이요, 항복한 자만도 5천명이나 되었다.

## 불과 7만 군사로 40만 대군을 무참히 깨뜨렸으니, 천문령 전투는 대첩이다.




대조영 드라마에서는 동모산으로 유민들을 데리고 가서 발해를 건국하려 한다.
그것을 안 당나라는 이해고에게 20만 대군으로 대조영의 목을 가져오라고 한다.

'김홍신의 대발해' 책에서는 대조영은 유민들을 살리고자 애을 쓰지만 수많은 군사와 유민들의 희생이 따른다. 결국 최후의 목숨을 건 천문령전투에서 대조영의 전략으로 이해고에게 대승을 거두게 되며 그때 이해고는 얼마 안되는 병사를 데리고 당나라로 다시 가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이해고와 이문도 천문령 전투에서 죽는다고 하는데...?)
참고로 '김홍신의 대발해' 에서는 대중상의 죽음은 전장에서가 아니라 병으로 이 시점에 죽었다.

역사에서는 이때의 죽음을 맞게 되는 역사인물은 말갈족 추장 걸사비우이다. 드라마에서는 어쩌면 검이가 거란족을 데리고 이해고와 맞선 상황 일거다.
앞으로 대조영 드라마에서는 금란도 같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이렇게 대승을 거두고 동모산에서 686년 발해를 건국하고 대조영은 발해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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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은 결단력과 얼음 같은 판단,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불사하면서도 작은 것을 위해서 목숨도 초개같이 내놓을 줄 아는 진정한 영웅.
고구려의 패망기에 태어나 전란 속에서 강력한 카리스마와 탁월한 리더십으로 고구려 유민을 당에서 탈출시키고 요동을 통합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다.

대제국 발해를 세운 고구려 유장, 고구려 멸망 후 영주성에서 거란 이진층과 연합, 당나라군을 깨뜨린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한다. 당과의 천문령 싸움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국가 건설의 기반을 굳히고 698년 동모산에 도웁하여 발해를 세운다. 개국 황제로 치세 22년, 성수 예순아홉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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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총 15명의 황제가 있었으며 약 230년간 만주와 연해주 지역(러시아 최동남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다고 한다.
대조영은 마지막 천문령 전투에서 이해고의 당나라 군대를(대조영에서는 어찌 그려질지 모르나 실제 이해고는 당나라에 투항하여 당나라 장수가 되었음) 대파하고 마침내 698년 2천리(약 800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금의 길림성 돈화시에 있는 동모산에 도읍을 세운 후 국호를 진震, 연호를 천통으로 정함으로써 칭제하고 황위에 올라 719년까지 22년간 재위하며 대발해제국을 통치합니다. 죽은 후 아들 무왕에 의해 고왕(태조 성무고황제)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아마 발해 건국 전에 세상을 떠난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도 대조영 생전에 추존(진국열황제)된 것이다. - 지식인 참조

대조영의 죽음
모두 들으시라! 만디를 다스린들 한 줌 흙을 면할 수는 없도다. 상전벽해가 어찌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거대한 능인들 마침내 짐승의 구멍으로 파이기 마련이니, 공연히 수많은 백성들의 노고를 하찮게 여기어 역사하지 말라. 짐이 세상과 연을 끊거든 이레를 넘지않게 장례를 치르되, 상례는 힘써 검약하라. 짐의 부황께서 그러하셨듯 화장하여 이 땅에 고루 뿌려, 짐의 혼이 누대에 번영을 누리는 것을 지켜보게 하라. 이를 적어 준칙으로 포고하고 영승하라! - <김홍신의 대발해 4권 173p>

그 이후 대조영은 용산으로 처소를 옮긴 지 하루 만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대중상의 죽음에서도 화장을 하라고 지시했다.  어쩌면 그래서 현재의 대조영의 무덤이 없는걸까? (??)





'대조영' 이 발해 건국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조영 주변인물이 죽음을 정리가 되면서 역사적인 발해 건국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눈에 가시같은 이해고는 거짓 충성 맹세로 목숨을 구걸하는 듯 보였지만 안시성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왜 고구려 태생인 이해고가 대조영은 그렇게 싫어했을까?

발해 건국전에 대중상, 걸사비우 등은 역사적으로 죽게 된다. 그리고 이해고는 안시성을 빠져나와 대조영을 배반하고 영주에 있는 설인귀(당나라)에게 가서 대조영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자 그 자리에서 자신의 한쪽 눈을 찌른다.
책에서도 당나라와 싸우가 가한 손만영이 죽은 후 당나라에 항복해서 당나라 장군이 되어서 걸사비우를 죽이고 대조영에게 엄청난 희생을 안기기도 한다.

'대조영' 드라마와 '김홍신의 대발해' 책(소설)를 비교하며 보고, 읽고 있다.
발해에 대한 역사는 별로 없다보니 드라마나 책이나 가상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고 있을 수 있다. 현재 책에서는 역사에 근거해서 최대한 자료를 뽑아서 소설화 시켰다고 한다.
드라마와 소설-둘 다 어느정도의 픽션은 필연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으니 감안하고 둘의 비교를 흥미롭게 봐 주기 바란다.

실존인물 : 이해고,걸사비우,설인귀,손만영 등
가상인물 : 초린, 검이, 흑수돌 등

이해고는 역사기록에도 있는 실존인물이다. 이해고는 거란족으로써가 아니라 당나라 장수로서 발해가 건국 되기전 부터 건국후에도 끊임없이 괴롭히던 인물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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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조영



'대조영' 드라마와 '김홍신의 대발해' 책과 비교해가면서 이해고에 대해 적어본다.


그렇다면 이해고는 대조영을 왜 싫어하는가?

대조영 드라마에서는..
이해고의 아버지가 반역을 저질렀을 때 대중상이 죽였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어느 정도는 대조영을 싫어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홍이라는 인물도 고구려 사람인데 거란족에 붙어서 고구려 후손들을 괴롭힌다. 결국 신홍의 목적은 이해고를 권세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길 원했다. 그러다 보니 고구려를 없애고 나라를 세우려는 목적으로 거란으로 가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초린을 사랑했기 때문에 대조영과 라이벌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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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대조영드라마


그럼  '김홍신의 대발해' 책에서는 이해고를 어떻게 묘사했나..
책에서 볼때 이해고는 대조영을
배반하고 싸우게 되는 계기는 아주 간단하다. 거란이 돌궐 묵철 과 당나라에게 패하면서 가한 손만영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면서 거란족에게는 존페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해고는 무상가한이 되지 않고 거란군사를 데리고 당나라에 항복을 선언하고 자신에게 실리추구를 하게 된다.

이해고는 그 전부터 당나라라는 강한 나라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무측천에게 가서 대조영의 목숨을 가져오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손만영이 죽기 전까지는 거란과 대조영과의 관계는 협력관계였다. 결코 대조영과의 적이되어서 싸울 필요는 없다.

책에서 발췌한 당나라 장수 이해고가 전투에서 이긴 후 돌아오자 무측천이 크게 기뻐하며 무씨성을 하사해서 무해고가 되었다는 기록을 전한다.
이해고는 꼭 대조영(발해) 싸움은 자신의 사리사욕과 권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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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에서 이해고가 설인귀에 가서 자신의 의지를 밝히고자 한쪽눈을 화살촉으로 찔렀다.(사진출처:대조영드라마)



이해고는 당나라 황제의 성으로 무씨성을 하사받은 후 무해고가 된 사연들


'대조영' 드라마에서 이해고에 대한 인물정보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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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북방의 패권을 다툰 비운의 영웅.
고구려 5부 귀족 중의 하나인 부씨 집안의 장자이지만 고구려 패망의 전란기에 휩싸여 거란족 추장 아사나이(이진충)에 의해 길러져 거란족 최고의 용사 야수이로 자라난다.

오누이처럼 같이 자란 아사나이의 딸 초린을 사랑한다.
고구려를 패망시키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워 설인귀의 수하에 들지만 끝내 초린의 마음은 대조영에게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초린에 대한 연정을 버리지 않고 그녀가 낳은 대조영의 아들을 자식처럼 키운다.
북방의 패권을 두고 대조영과 마지막까지 대립하지만 결국 대조영에게 패하고 마는 비운의 영웅이다.


'김홍신의 대발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거란 가한 손만영이 죽고 나서 이해고는 당나라에 항복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당의 군사가 되어서 대조영과 싸우게 된다.

무측천은 이해고를 토격군 통수로 삼고 고구려군과 말갈군을 토평하라는 칙명을 내렸다.
"사력을 다해 평정하고 돌아오면 국공으로 삼고 식읍을 내려주겠다"
"목숨을 바쳐 성덕에 보답하겠사옵니다."
이해고는 이런 날이 오리라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역밀과 여러장수들이 거란의 무상가한에 올라 거란을 지켜 달라 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대들보를 손가락으로 버티려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유학하면서 당나라가 강대한 나라이고, 언제라도 백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돌궐까지 기병하는 마당에 그는 항복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상과 대조영의 수급을 바치고 걸사비우를 참살하라, 그리하면 내가 무씨성을 하사하겠다."
이해고는 국공 반열에 오르는 것만도 영광인데 황제의 종성을 하사한다는 소리에 정신이 아득할 만큼 기뻤다. - 김홍신의 대발해 3권 p20

이후 이해고에게 걸사비우을 맞게 되고 끊임없이 대조영을 괴롭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거의 죽음으로까지 대조영을 몰고가지만 그때마다 살아서 더 크게 이기곤 한다. 그런 후에 동모산에 대발해를 건국하게 된다.

아래는 그 이후 당나라가 계속해서 밀리다가 이해고가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니 이해고에게 무씨성을 하사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해고는 황제와 같은 성으로 무해고가  되었다.
이해고는 요서에 잡아들인 반당 무리들을 압송하여 함추전에 바쳤다. 발해로 인해 울화를 끓이고 있던 무측천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얼마나 기뻤으면 친히 이해고를 불러 좌옥금위대장군을 삼고, 연국공에 봉하고 무씨 성까지 하사했겠는가. 거란을 배반한 항장 이해고는 드디어 당나라 국공이 되었다. 이씨 성을 버리고 황제와 같은 무씨가 되었으니, 이제 무해고였다. -  김홍신의 대발해 4권 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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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 드라마를 보다가 동모산에 발해를 건국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체 고구려가 멸망 후 얼마만에 건국인가 궁금했다. 요즘 태왕사신기의 광개토대왕이 영토확장으로 얻은 것을 왜 고구려는 멸망했는지도 궁금해서 대조영 자료를 가지고 정리 해본다.

7세기 중반, 세계 최강국이던 당나라 고구려를 침공.
풍전등화?
일찍이 수나라를 굴복시킨 고구려가 아닌가?
당태종 이세민이 직접 이끈 30만 대군은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 앞에 무릎긇는다.
대제국 고구려의 위용이 휘날린지 불과 20여년 후인 668년.
내부 분열로 인해 고려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패망한다.

수많은 고구려인들이 학살되고 통한의 망국민이 되어 유민으로 떠돈다.
암울한 패망의 그늘 속, 한명의 고구려 청년이 분연히 일어난다.
당나라의 지배에서 신음하던 고구려 유민을 구해내고 흩어진 군대를 규함.
처절한 투쟁을 통해 고구려의 전통성을 잇는 새나라를 건설한다.
고구려 쇠망 불과 30여 년만의 일이다.
- KBS 대조영 드라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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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멸망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665년 연개소문이 사망하고 난 후 고구려는 거듭 내분이 일었고, 666년 남생-남건-남산 형제의 내분이 일고, 남생은 결국 당에 투항한다.
그리고 요동의 성이 차례 차례 함락되면서 668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결국 평양성이 함락, 고구려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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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조영



발해의 연표
    698년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713년  대조영, 당으로부터 발해군왕(渤海郡王) 칭호 받음.
              당과 공식적인 외교관계 수립
    719년  대조영 사망, 무왕 즉위
    727년  일본에 사신 파견, 교류 시작
 730년대  동모산에서 중경으로 천도
    732년  당의 등주(燈州)를 공격
    733년  신라, 당의 요청으로 발해 공격. 폭설로 실패
    735년  신라, 당으로부터 대동강 이남의 옛 고구려 영토의 영유를 공식 인정받음
    737년  문왕 즉위
    756년  중경에서 상경으로 천도
    762년  당, 문왕에게 발해국공 수여
    777년  발해 문왕의 셋째딸 정혜공주 사망
 780년대  상경에서 동경으로 천도
    792년  발해 문왕의 넷째 딸 정효공주 사망
 793년경  동경에서 상경으로 천도
 818년경  선왕 즉위
 893년경  이 무렵까지 주변 국가에서 발해를
              ‘해동성국(동방의 강성한 나라라는 의미)’이라고 부름
    926년  거란에 멸망

출처 : KBS 대조영




대조영 드라마와 김홍신의 대발해 둘다 허구일수도 있을거다.
발해에 대한 사료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근거자료가 많이 부족하다.

김홍신의 대발해는 그마나 진실을 근거로 많은 자료를 가지고 대하소설로 만들어 논 역사서이다. 1권부터 읽기 시작해서 4권째로 들어갔다.
작지만 여러 기록을 남겨 볼까 해서 첫번째 만든 것은 대중상 가계도이다.

발해를 건국하기 까지 많은 신하들이 있을 건데 그 부분도 리스트에 올려 놓도록 하겠다.
첫번째 잡은 대중상의 가계도이다.
대발해 책에는 대화인이라는 대조영의 누이가 나온다. 여기병을 지휘하는 장군으로 나온다. 대조영의 동생으로 대야발도 나온다.  그외 대사달이라고 대조영의 사촌동생으로 간계로 이해고를 크게 승리한다.

대중상이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
내 몸을 태워 고운 가루가 되고 싶소이다. 미세한 가루 하나하나가 용맹한 군사가 되어 적을 물리치고 고구려의 혼을 이어받은 나라를 세우고 싶소이다. 고구려 이전에는 더 넓은 강역이 우리 선조들의 땅이었소. 그 모든 땅을 되찾아야 하오. 내가 죽거든 반드시 불태워 재를 만드시오. 그리고 장쾌하게 바람 부는 산 위에 올라 천하에 뿌려주시오. 결코 후하게 장사 지낼 생각하지 마시오. 그냥 바람에 날려만 주시오.

불자인 내가 오계를 무수히 어겼소이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했음에도 수없이 어겼소이다. 생명 있는 것을 죽이거나, 남을 시켜죽이거나, 남이 죽이는 것을 칭찬하거나 기뻐하지 말라 했거늘 나는 적을 무수히 죽였고, 짐승을 수없이 잡았으며, 사람 죽인 자를 칭찬하고 함께 즐겼소이다. 주지 않으면 훔치지 말라 했으나, 나는 적의 재물이라는 구실로 무수히 빼앗았소이다. 어디 그뿐이겠소. 나라를 세우는게 대업이라 여기어 고구려 백성들의 마소를 거뒀고 칼을 만들기 위해 보습과 쇠스랑도 강제로 징발했소
그외 삿된 음행을 짓지 말고 항상 공손한 마음으로 청정한 법을 배워야 했는데 흐트러진 마음으로 음행을 일삼고, 남에게 공손을 강요했으며, 우두머리의 삿됨이 죄가 아닌 줄 알았으니 이런 죄악이 어디 있으리오.
거짓말을 하지 말라 했는데도 나는 우두머리 노릇한다는 핑계로 수없이 거짓말을 했소이다. 옳은 것을 그르다 했꼬, 그른 것을 옳다 했으며, 적을 이간질시켜 싸우게 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 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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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까지 읽어가면서 만들어 본 대중상 가계도이다.


발해는 총 15명의 황제가 있었으며 약 230년간 만주와 연해주 지역(러시아 최동남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다고 한다.
대조영은 마지막 천문령 전투에서 이해고의 당나라 군대를(대조영에서는 어찌 그려질지 모르나 실제 이해고는 당나라에 투항하여 당나라 장수가 되었음) 대파하고 마침내 698년 2천리(약 800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금의 길림성 돈화시에 있는 동모산에 도읍을 세운 후 국호를 진震, 연호를 천통으로 정함으로써 칭제하고 황위에 올라 719년까지 22년간 재위하며 대발해제국을 통치합니다. 죽은 후 아들 무왕에 의해 고왕(태조 성무고황제)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아마 발해 건국 전에 세상을 떠난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도 대조영 생전에 추존(진국열황제)된 것이다. - 지식인 참조


대무예 - 대조영의 큰아들로 발해 제2대 황제(재위 719~737) 이다. 일본과 수교하여 사신 왕래와 문물교환의 자주 한다. 무력을 양성하여 726년 아우 대문예에게 흑수말갈을 공격하게 하고, 732년에는 당나라 등주(산동성)와 장서을 정벌한다.

대문예 - 무황 대무예의 아우. 726년 당나라가 흑수말갈을 끌어들여 발해를 침공할 기미를 보이자, 무황의 명에 따라 흑수말갈을 공략하러 나섰다가 반역하여 당나라에 망명한다. 몇 번이나 무황을 죽일 기회를 노렸으나 실패하고 당나라에서 죽는다.

대흠무 - 발해의  제3대 황제 문황, 발해 강역을 넓히고 강성대국의 기틀을 다진다. 번족들을 제압하여 변방을 안돈시키고 무명선사를 천축국에 보낸 진신사리를 구해 오는 등 불법을 숭상한다. 일본과 교역을 터 통맹을 맺으며, 화폐개혁과 조세개혁을 단행하여 유신에 힘쓴다.



김홍신의 대발해책을 읽어가며 요즘 대조영을 보기시작했다.
어제 본 대조영 드라마와 최근에 읽고 있는 김홍신의 대발해를 읽다보니 비슷한 시점인것 같아서 드라마와 책을 간단하게 비교해봤다. 대조영은 보게 된 것도 이번이 3번째인것 같다. 대발해 책을 읽어가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조금은 더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은 책대로 드라마는 드라마 대로 재미가 있어서 좋다. 요즈음 밀린 대조영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조영이 재미있어진다.


하나, 거란이 당에 항복하는 과정

지난 밤(10월 13일) 대조영 드라마를 보니..
거란가한 손만영은 당나라와 돌궐과 싸움에서 참패를 당했고, 많은 장수들이 배반을 하면서 매우 기울게 되었고 이해고장군 마저 고구려 대조영에게 참패를 당해서 기를 뺏기고 죽었거나 살아있는지 조차 힘든 상황이다 보니 거란을 살릴길이 없어서 당나라에 항복을 선언하고자 하는 것 같다. 또한 이해고는 대조영과 전투속에서 거의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막고 피해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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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책은 어떠한가?
 책에서는 이 전투와 비슷한 상황이 있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전투에서 대조영과 싸움에서 이해고가 다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거란가한 손만영은 697년(6월 20일) 노궁노라는 부하에게 목이 잘려서 죽는다(당나라의 계략으로)
그 이후 이해고가 3대 가한이 되지만 내분도 일어나면서 결국 당나라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그 이후 부터는 대조영과 싸움이 벌어진다.
이해고가 당나라에 항복하기 전 까지는 고구려는 거란과 협력관계도 있었기 때문에 싸움을 하지 않았다.

거란은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킨 민족이다. 그러나 대중상과 대조영은 거란과 손을 잡고 끊질기게 당나라를 괴롭힌다. 이해고의 항복으로 다시 거란과 싸우게 된다.
이해고는 대조영의 목숨을 가져오면 당나라의 장수로서 황제와 같은 성인 무(武)씨성을 주겠다고 하겠다고 하니 그때 부터 고구려와 싸움을 시작한다.

둘, 대조영에게는 어떤 자식이 있었는가?

대조영 방송에서는 이검이라는 아들만 존재한다.
방송에서 이검은 초린의 아들로 아버지는 이해고로 되어 있다. 실제 이검의 아버지는 대조영이라는것을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름이 '대검' 이야! 하는데 나중에 초린이 대조영에게 다시 온다고 한다.
댓글 지적 때문에 참고해서 찾아 보니 숙영에 아들 낳은 아들 단이가 있다.
(그런데 맞는지 모르겠지만 검이가 대무예가 되고 단이가 대문예가  된다고 하는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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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책에서는 큰아들 대무예, 아우 대문예가 있다.
초린이라는 여자도 없으며 이검이라는 아들도 없다. 약간 흥미를 가지고자 가상인물을 만든 것 같다. 큰아들 대무예는 차후 발해 2대 황제가 되어서 일본과 수교하는 등 큰 일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우 대문예는 발해를 반역하여 당나라로 망명한다. 꺼꾸로 발해 왕을 죽일 기회를 넘보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 이검 : 대조영의 핏줄이지만 이해고를 아버지로 알고 검이란 이름으로 이십여년을 살아왔다. 어머니 초린과 함께 당병의 추격을 받아 도망치던 중에 대조영에의해 목숨을 구한다.
  • 대무예 : 대조영의 큰아들로 발해 제2대 황제이다. 무력을 양성하여 726년 아우 대문예에게 흑수말갈을 공격하고, 732년에는 당나라 등스와 장성를 정벌한다.

셋, 대조영과 거란족의 지략가는 누구인가?

대조영 방송에서는 대조영 옆에는 미모사가 있으며 거란 이해고 옆에는 신홍이 있다.
대조영 옆에는 미모사라는 백제의 제사장이었던 사람의 손자이다. 책과 유사한 부분은 있다. 책에서는 비슷한 인물로 신재용, 손담, 손재 등이 나온다.

원래 백제의 제사장이었던 사람의 손자.
백제 멸망 후 당나라 땅에서 백제성이라는 집촌지를 만들고 살아왔으나 대조영 일행을 도왔던 일로 백제성이 멸망당하자 당나라를 떠난다.


신홍은 희대의 간웅. 대 전략가.
5부 귀족중의 하나인 부씨 가문의 집안 살림을 맡았던 집사의 자손이다.
부지광이 대중상에게 죽음을 당할 때 아기를 안고 안시성을 탈출하여 거란의 부족에 맡긴다. 천하의 재사(才士)인 미모사와 비견되는 뛰어난 전략과 계략을 펼쳐 보이며 마지막까지 대조영을 괴롭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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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대조영 옆에는 손재가 있으며 거란가한 이진충과 손만영 옆에는 역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고 옆에는 따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 역밀은 병법에 능하며 천문에도 밝은 거란군 군사. 고구려 유학 당시 대중상에게 무예를 배우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도 도움을 받아 대중상을 평생 은인으로 여긴다. 당나라에 항복하려는 이해고를 막으려다 두 아들을 잃는다.

대(大)씨는 고구려의 왕족인 고(高)시의 별종이었다. 대씨를 고씨의 별종이라 하는 것은, 왕족인 고씨의 호구가 늘어 수효가 많아지자 방계손에게 대씨를 하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당나라 사람들은 고씨를 가리켜 고구려 순종이라 했고, 대씨를 고구려 별종이라고 불렀다. 당나라에서는 무시하고자 대중상을 걸걸중상이라고도 불렀다.

드라마에서는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책에서는 대중상에게 딸이 있었다. 이름은 대화인으로 대조영의 누이로, 여기병을 지휘하는 장군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미모로 주석모와 유시복 등 장군들의 흠모를 받는다. 유유겸과 연이 닿아 그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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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진은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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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에서 기마격구에 대한 장면이 1회분을 다 할애 할 정도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장면을 보고 우리나라도 말을 타고 저런 경기를 했구나! 하면서 매우 흥미롭게 봤다. 그동안 역사 드라마에서 볼수 없었던 내용이라 더 재미있게 봤다.

근데, 격구에 대한 역사를 찾아 보니 광개토대왕시절에는 아직 시작 되지 않았을 쯤이라고 한다. 대략 통일신라시대와 발해쯤에서 나왔다고 하니 어찌보면 고구려 말기에 나타난 것 같다.

격구가 나올 때 쯤 연도는 ?  618년 정도
발해 건국은? 698년

'김홍신의 대발해' 책에서도 격구에 대해서 나오고 있다.
아직 발해가 만들어지기 전이고 하다 보니 고구려 말쯤에는 훈련 중에 하나로 또는 휴식중에 재미있게 놀이로 활용 했다는 내용으로 나온다.

책에 위하면 격구는 놀이로 즐길 수 있어 군사들이 매우 좋아 했던 것중에 하나이다.

격구는 말 탄 군사들이 패를 나누어 공을 치거나 빼앗는 경기다.
많을 때는 몇 십명, 적을 때도 열 명쯤 참가하는데, 각 패는 모두 채기를 차고 북소리가 울리면 공을 따라 좌우로 말을 달리면서 상대편의 문에 공을 처넣는다.
격구는 격렬해서 자칫 상처가 심하거나 부상으로 죽기도 했다. 자루끝이 한 뼘쯤 되는 흰 나무 막대를 구월이라고 하는데, 그 막대로 공을 이리저리 굴리고 쳐대기 위해서는 체력이 좋고 마술이 뛰어나야 했다.

기마격구는 말이 필요하지만 말이 없을 때는 뛰어다니는 종보격구를 즐겼다. 종보격구는 기마격구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할 수 있어 좋다.

그외 다른 놀이는 축국이다. 축국은 기마격구에서 말과 구월만 내려놓고 발길로만 상대 진영에 공을 차 넣는 경기다. - (대발해 1권 147p)

조련장 한 켠에선 격구가 한창이었다. 흔히 기마격구라 하여 무예를 연마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기본기였다. 무술은 한 식경만 계속 해서 진력이 나지만, 격구는 놀이로 즐길 수 있어 군사들이 매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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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da_love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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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da_love1210)





대발해 1권을 읽다보면 나오는 등장인물과 그 시대의 역사를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읽는데 어려움이 있다.  맨 앞 부분에 있는 내용을 좀 더 확인하면서 읽다 보면 좋을 것이다. (2권때는 다소 틀리다.)

아래는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정리해서 올린 자료이다.

대씨는 고구려의 왕족인 고시의 별종이었다. 대씨를 고씨의 별종이라 하는 것은, 왕족인 고씨의 호구가 늘어 수효가 많아지자 방계손에게 대씨를 하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당나라 사람들은 고씨를 가리켜 고구려 순종이라 했고, 대씨를 고구려 별종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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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10권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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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상 - 발해 시조 고황 대조영의 아버지, 고구려가 망하자 대조영과 함께 예하군사를 이끌고 태백산으로 가 고구려 유민을 모은다. 그후 676년, 거란족과 연합하여 영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며, 고구려 고지 회복을 위해 동쪽으로 이동한다.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가는 도중 당나라군과 싸우다 697년 섣달, 갑옥을 입은 채 숨을 거둔다.

출처(KBS 대조영) -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부장출신으로 중원 정벌에 큰 공을 세운다.

하지만 제왕지운을 가진 자식을 가진 덕에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과 아내의 생사도 모른 채 만리장성 북쪽의 고려성에 보내지게 된다.


당나라의 대대적인 고구려 침공이 시작되고, 이진성에 고립되어 군사들과 함께 마지막 결전을 준비할 때, 장성한 아들 대조영이 찾아온다.

아들과 함께 고당전쟁의 한가운데를 뚫으며 고구려로 돌아와 고구려 부흥과 새로운 개국에 투신하며 평생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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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 - 대제국 발해를 세운 고구려 유장, 고구려 멸망 후 영주성에서 거란 이진층과 연합, 당나라군을 깨뜨린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한다. 당과의 천문령 싸움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국가 건설의 기반을 굳히고 698년 동모산에 도웁하여 발해를 세운다. 개국 황제로 치세 22년, 성수 예순아홉에 눈을 감는다.

출처(KBS 대조영) - 불같은 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