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궐 화장실 문화는 어떨까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임금이 대변을 보고 싶다면 '복이나인'과 몇 명의 궁녀들은 황급히 4각형의 휘장을 궁궐 한쪽에 둘러치더니 가운데 매화틀을 올려놓는다. 여기서 매화틀이라는‘좌변기’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데, 조선시대 임금의 ‘똥’은 똥이 아니었다. 임금의 눈물을 옥루(玉淚)라 부르던 그 시대에똥이라고 함부로 불렀겠는가? 해서 임금의 똥을 ‘매화 향기가 난다’며 매화(梅花)라 불렀던 것이다. 즉, 매화가 머무는 틀이란뜻에서 매화틀이라 불렀다(매우틀이라고도 하였다).
임금이 거주하던 내전에는 화장실이 없었으며, 갈 필요도 없고, 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고 합니다. 싸고 싶을 때마다 나인들이 휘장을 치고, 매화틀을 대령해 즉석 화장실을 만들어 주는데, 화장실이 필요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조선시대 임금은 소변은 요강에 보았으며, 대변은 아래 그림 처럼 매화틀(梅花틀,매우틀)이라는 휴대용 변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매우틀은 임금의 편전과 왕대비의 침전에만 있던 이동식 화장실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신하들은 어떻게 해결을 했을까 궁금 합니다.
임금이 거처하는 곳에 어찌 냄새나는 화장실을 놓을 수 있을 수가 없어서 되도록 내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화장실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외전이라고 함)
경복궁에만 28군데 총 51.5간이나 되는 화장실이며 이름은 이름은 서각(西閣) 혹은 혼헌(渾軒)이었다고 합니다.
(1간은 4개의 기둥이 들어가는 작은 건물이다. 초가삼간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터인데, 그런 집 17채를 화장실로 만들었다 보면 됩니다.)
문제는 이런 화장실이 너무 먼 곳에서 떨어져 있었고, 화장실이 너무 커서 밤에는 궁녀 혼자 들어가기에 ‘무서웠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셋씩 짝을 지어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고 하네요.
자료출처 :
추신 : 임금이 대변을 본 후 나인들이 밑을 씻겨주고, 변기도 잘 씻어서 보관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가끔은 왕이나 왕비의 의료기관인 내의원에거 그 대변을 가져다가 건강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