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왕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식으로 정치를 했는지 그때의 어떤 역사적 내용이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최근에는 조선시대의 다양한 책들이 많이 소개 되었다. 얼마전 "혈의 누" 영화도 조선왕조실록나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읽어볼 만한 책 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의 뒷골목 풍경"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과 치료방법을 통해 조선 시대 의학 변천사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다.
세종은 젊은 시절 육류 없이는 식사를 못 할 정도로 육식을 즐겼으며 사냥 등 운동도 싫어해 비만, 35세 이후 당뇨병으로 추정되는 병과 눈병을 앓았고, 이를 온천욕으로 치료하려 했으나 별다른 차도를 보지 못했다.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종기를 앓았으나 치료법은 종기 부위에 고약이나 거머리를 붙이고 약을 먹는 정도 수준이었다. 그 결과 문종은 40세도 안 돼 별세했다.
연산군 시대에는 의원들이 '음욕(淫慾)을 채우려는'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양기(陽氣)를 돕는' 풀벌레와 뱀을 진상했다는 기록도 있다.
심지어 중종은 열이 심하게 났을 때 해열제로 '야인건수(野人乾水)'를 먹었다. '야인건'이란 인분(人糞)을 뜻한다.
드라마 '대장금'의 배경이 된 중종 후반부터 경종 때까지는 어의(御醫)들이 명나라 의학의 영향을 받아 왕의 질병치료에서 원인을 찾는 것을 중시하게 됐으며 특히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침구술이 발달해 내의원 치료에 널리 쓰였다.
추위를 잘 타고 화병과 눈병을 오래 앓은 광해군은 먹는 약이 잘 듣지 않아 침을 많이 맞았으며, 38세에 폐위된 이후에도 내의원의 진료를 계속 받다 6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영조 이후로는 왕들의 질병치료에서 침술이나 강한 약물을 기피하고 일상적인 보양법(補陽法)의 건강관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평소 보양법을 중시한 영조는 자신의 장수와 건강비결을 '인삼의 정기'라고 생각해 72세 되던 해에는 1년에 20여근의 인삼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조는 철저한 건강관리 덕택에 조선시대 왕 중 최장수인 83세까지 수명을 누렸다.
보양법을 중시하는 이러한 경향은 현대까지 이어져 건강관리와 질병치료에 '보약'이 큰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한의학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중앙일보 자료출처 : 세종은 비만ㆍ눈병, 광해군은 화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