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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은 후임자인 벤 버냉키에게 넘어갔다." 그리스펀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네요. 중앙일보에 난 기사가 재미 있어서 소개 올립니다.



한 입으로 두말하고도 존경받은 이는 흔치 않다. 앨런 그린스펀이 그중 한 사람이다. 18년간 미 연방준비제도의사회(FRB) 의장을 맡아 '세계의 경제 대통령' 으로 불렸으며, 세계 중앙은행 총재 중 유일하게 톰 크루즈나 마이클 조던 뺨치게 이름을 날린 바로 그 사람.

그의 말은 분명 한 입에서 나오되 듣는 이에 따라 해석이 둘로 갈리기 일쑤였다. 1999년 필 그램 상원의원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누구나 그의 말을 자기 쪽에 유리하게 해석한다"고 했다.

이런 이중성은 모호함에서 나왔다. 그가 9.11 테러 후 경기 진단에 사용했던 '소프트 패치(soft patch)' '상당 기간(considerable period)' 등은 모호한 수사(修辭)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98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은 그의 수사를 '헷갈림의 미학'이라며, 이미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고 평했다.

그린스펀 자신도 헷갈림을 즐겼다. 청문회에서 한 하원의원이 "진술을 듣고 나니 이제 당신 생각을 알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즉각 "그렇다면 내 말 뜻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되받았다.

그의 모호함엔 계산된 유머와 신중함이 깔려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인 아서 레빗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안녕하시죠?"란 인사에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을 끊었다. 국회에선 한 기자가 "건강하시죠"하고 묻자 "노코멘트"로 응수했다. FRB 의장의 건강과 안녕은 '그 자체'가 이미 보안사항이란 것이다.

매일 오전 5시30분의 반신욕 시간을 그는 '유레카 모멘트(발견의 순간)'로 불렀다. 그의 연설문 대부분은 그때 탄생했다. 하루 중 가장 맑은 정신에 만들어낸 그토록 모호한 문장. 듣는 이야 오죽 헷갈렸을까. 밀턴 프리드먼이 '천재적 솜씨'라고 극찬한 데도 까닭이 있다.

그린스펀이 FRB 의장직에서 오늘 물러났다. 떠나는 그의 공과(功過)마저 헷갈린다. 숭배하는 쪽에선 사상 유례 없는 긴 호황을 이끈 '신경제의 대부'라 찬양하고, 다른 한쪽에선 재정과 무역적자를 산더미처럼 늘려 놓은 주범으로 매도한다. '헷갈림의 대가'다운 퇴장이다.

이제 공은 후임자인 벤 버냉키에게 넘어갔다. 버냉키가 그린스펀에게 받은 열쇠로 그린스펀의 책상 서랍을 열고 나면 답이 나올 것이다. 래비 바트라는 '그린스펀 경제학의 위험한 유산'에서 버냉키의 답을 이렇게 예견했다. "미스터 앨런, 서랍 속에 아무것도 없지 않소."

중앙일보 자료출처 : 그린스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