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우리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셨다가 나중에 교편생활을 하셨어요. 군에서는 실제로 훈장도 타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상당히 가정을 군대식으로 엄하게 이끌었었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저희 반 담임이 되셨는데 이상하게도 다른 아이들한테는 너그럽게 대하는데 나에게만은 여전히 엄하게 하셨어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이쁜 놈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심정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어쨌든 전체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분이셨죠.
그런데 남에게는 참 잘해줬어요. 인심이 후하다고나 할까? 그런 것 있지요. 인심이 후하다 보니까 그런가는 몰라도 경제적 측면에서의 능력은 부족했어요.
■■ 1975년에 쓰신 소설 ‘훈장(勳章)’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사실 아버지의 엄격하신 보수성과 경제적 능력 등으로 해서 자랄 때 아버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어요. 대부분 자식들이 그렇지만 원망이랄까 그런 것들이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스물 중반을 넘기면서 세상살이에 대해서 정말 치열하게 고민을 했는데 문득 아버지 시대에는 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해서 비로소 이해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그런 심정을 총결산해서 쓴 것이 바로 ‘훈장’이라는 작품이에요. 그래 그것을 가지고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당선이 되었어요.
■■ 요즘의 아버지들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들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 한 가지일 거예요. 자식들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특히 요즘은 더 어렵지요. 사회 전체가 행복의 기준을 오직 물질적 잣대로 재는 경향이 있다보니까 아버지를 판단할 때 경제적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제일로 치는 거죠.
사실 ‘잘 산다는 것’은 ‘돈이 많다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 세상은 너도나도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잘 살아 보자’식으로 ‘돈’으로만 판단을 하니까 잘 난 아버지인가 못난 아버지인가도 그런 잣대로 보아버린다는 거죠.
우리나라 상류층 1%가 부를 거의 독점하다 시피 하고 있는데 아마 돈으로만 쳐서 이야기한다면 그런 계층의 아버지가 되어야 제대로 아버지 대접을 받겠지요. 그러나 아버지의 역할이나 아버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런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들이 아버지를 따뜻하게 받아줘야 한다고 봅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아버지 마음은 다 같아요. 자식을 무한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꼭 같은 아버지지요.
■■ 아버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대부분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자식을 인간답게 키우는 일이라고 봅니다. 공부해서 취직하고 자기 밥벌이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 됨됨이가 중요해요. 인간다움. 그러려면 먼저 아버지가 떳떳하게 살아야만 그렇게 가르칠 수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밤을 새워가며 치열하게 글을 써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떳떳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답게 키우려면 자식들과의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치관에 영향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거지요. 작은 것에도 행복할 줄 아는 자세 같은 것들을 깨우쳐 줘야 되요.
■■ 그런데 실제로는 대부분 아버지들이 자식을 보면 항상 걱정스러워 하잖습니까?
자식은 잘 났거나 못났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한 마디로 ‘애물단지’라고 생각합니다. 자나 깨나 걱정하는 게 부모지요. 자식 나이가 오십, 육십이 넘어도 부모들이 ‘차 조심 하라’고 한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그래요.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걱정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너무 조급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날갯짓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창공을 훨훨 날라 주기를 바라는 기대치지요.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고, 또 각자마다 그 때도 다른 것이고 그런데 일률적으로 비교해서 조급하게 기대를 해요. 요즘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엄친아(엄마친구의 아들)’라고 하잖아요? 누구 아들은 이랬다는데 너는 이게 뭐니 식으로 하도 비교를 하니까 말이지요. 기다려줘야 합니다. 대학 나오고 취직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때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이루어 놓은 것이 얼마나 된다고 이런저런 기대를 합니까? 자식이 빨리 철들고 빨리 성공하고 빨리 효도하기를 기대하지만 기대만으로는 절대 자식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또 자식도 부모의 기대에 밀려서 너무 일찍 무언가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부모에게 불효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기반을 충분히 쌓아야지요. 모든 자연의 이치가 그렇잖아요. 철이 들어야 제 과일이나 곡식이 나오잖아요. 어떻게 1년 내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를 기대합니까? 그건 잘못이지요. 하긴 요즘 곡식이나 과일은 그렇게 재배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철없는’ 과일입니다. 철들어서 나오는 게 가장 좋아요.
부모나 자식이나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 요즘 아이들이 버릇없다, 또는 아버지와 자식 간에 경계가 없다라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위계질서가 무너져 버린 이유는 한 마디로 교육의 문제 때문에 그래요. 요즘 교육은 점수를 잘 받는 것, 좋은 대학 가는 것 등등에 대해서만 올인하지 다른 것은 신경 안 씁니다. 아이들이야 배워야 그걸 알지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 이런 교육이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요즘은 매가 많이 없어져 버린 것도 그 한 이유라고 봅니다. 매를 폭력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지요. 매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사랑의 매와 사탕의 매, 사망의 매가 그것인데, 사랑의 매는 한 마디로 때리는 쪽이 더 아파하는 매입니다. 아이를 위해서 고통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사탕의 매는 남의 눈치를 보면서 체면을 위해서 때리는 매입니다. 내가 아이를 가르치고자 하는 본심이 아니라 누가 곁에서 버릇없다고 한 마디 하면 혼내는 시늉으로 꿀밤을 쥐어박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지요. 가르치는 진심이 없는 이런 매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먹여서 충치가 생기는 것처럼 잘못된 버릇을 들이게 돼요. 사망의 매는 감정으로 때리는 매입니다. 아이를 미워해서 때리든지 또는 부부싸움 끝에 화풀이로 매를 들던지 하는 식인데 이런 매는 아이를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의 매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 실제로 아이들에게 매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예 엄하게 키웠죠. 고 3이 되어서는 말이 통하니까 매를 해제해 버렸지만 그 전 까지는 매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뉴스에서 청소년들의 비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이들을 불러서 엄하게 꾸짖었어요. 그러면 이놈들이 ‘왜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우리를 야단쳐요?’라고 물어요. 제 대답은 ‘너희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잘못할까봐 가르치는 거다’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둘 다 반듯하게 잘 컸어요.
■■ 교육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인데요, 요즘 유행하는 기러기 아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절실함이야 뭐라고 말 못하겠지만 저는 잘못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에게야 모든 것을 바쳐서 가르치고 길러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가족이 해체되면서까지 자녀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건 본말전도가 아닌가요? 지나치다고 봅니다.
■■ 끝으로 요즘 경제 불황으로 힘들어하는 아버지들에게 격려의 한 말씀 해주신다면?
제가 말로만 하는 이야기가 무슨 위로나 격려가 되겠습니까? 빨리 경제가 좋아지길 바랄 뿐입니다. 아버지들은 다들 어느 정도 세상을 살아 보셨기 때문에 ‘침착하게’ 이겨내리라고 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세상사 그러려니’ 하는 여유도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소설가 이외수 인터뷰는 쉽지 않았기에 김용전 작가 혼자 진행했다. 김용전 작가는 화천 동촌리에서 귀농으로 살고 있다.
(사진 설명) 이외수 소설가와 김용전 작가
이외수 선생은 정말 바쁘시다. 원래 인터뷰를 하려면 이 메일로 신청을 한 뒤 공식 일정을 받아서 해야 한다. 선생의 홈피에 가 보면 그런 절차가 나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선생의 일정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번에는 평소처럼 같은 화천 시골의 이웃에 사는 작가 자격으로 인사차 들렀다가 갑자기 인터뷰를 진행했다. 선생과 사모님께는 정말 큰 실례를 범한 셈이다. 그러나 선생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아주 친절하게 응해 주셨다. 혼자 하는 인터뷰라 인터뷰 중간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인터뷰를 마치고 찍은 사진이다. 돌발 인터뷰인데도 선생은 다정하게 어깨를 다독여 주셨다. 선생의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도 되었음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
추신 : 김용전작가 사는 화천 동촌리에서 청년회가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2월 초에는 날씨 관계로 수액이 안 나오다가 요즘 들어 일교차가 적당해지면서 생산량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송에서 고로쇠 수액 채취량이 적어서 농민들이 울상이라고 보도를 해 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고로쇠가 많이 나온다고 하면 ‘그거 물 탄 거 아니요?’하는 식으로 생각을 해버려서 주문이 적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귀농해서 살고 있는 마을 청년들이 정성으로 채취한 남한 최북단 청정 고로쇠를 많이 주문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작가가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염체불구하고 인터뷰 말미에 공지합니다. 널리 해량하시기 바랍니다.(김용전 작가 블로그 - 화천 동촌리 고로쇠 수액)'혜민아빠 인터뷰이야기 > 아버지를 생각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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