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에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어요. 살면서 아버지를 너무나 안 좋아했기 때문인데, 제가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도 멀쩡하자 친구들이 "어머 이상하다 너,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는 그렇게 헤매더니, 엄마 돌아가셨는데 괜찮니!" 그러는 거예요. 그때는, 너무 고생했거든요. 아버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죄책감이 컸던 것 같아요. 자식의 도리라기보다는 아버지가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한 게 없어서 그래요. 저한테는 새 옷 사주고, 뭐든 지 좋은 것 사주고, 교복도 항상 좋은 거로 사주었는데, 아버지는 떨어진 옷, 낡은 옷 등을 입으셨어요. 당신을 위해서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당시에는 아버지를 무식하다고 싫어했던 것 같아요. 무학이고 무식인 거, 엄마는 무학이고 그랬지만 글을 읽으셨는데, 아버지는 정말 당신 이름도 못쓰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하고 맞지 않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딸도 아버지를 바라본 것 같아요. 중학교 때 까지는 안 그랬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저도 아버지를 싫어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어느 정도로 순박하셨나하면, TV에서 어떤 사람이 역할을 하고, 다른 드라마에서 역할을 바꿔서 다른 여자랑 살면 "저 남자는 왜 저 여자랑 살다가 다른 여자랑 사느냐"라고 해요. 엄마는 그런 이야길 들으면 화가 나는 거예요. 그게 연속극이지, 그러니까 저는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에 엄마하고 소원해졌어요. 엄마를 미워하게 된 거예요. 아버지 돌아가신 후 그 죄책감을 엄마한테 전가시킨 거지요. 엄마가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다"라고. 사실 85세에 돌아가신 거니까 그런 것은 아닌데 말이죠. 그런 후 엄마하고 멀어졌어요. 그것 때문에 엄마도 상처를 입으셨죠.
결혼 생활 하면서 아무리 잘난 남편도 단점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것을 가지고 자녀 앞에서 엄마가 그대로 이야기하면 안 좋은 것 같더군요.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그대로 인지가 되는 것 같아요. 둘이 있을 때에는 "뭐야 책 좀 읽어, 만날 누워서 TV 만 보는 거야?" 하면서 그러는데, 아이 있을 때는 "아빠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시니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취재하면서 딸만 둘이 있는 곳이 있었어요. 딸들이 대학생인데, 집에 오면 특히나 아버지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안하고 "엄마 고생시키지 말고, 엄마한테 잘해주라"는 말만 한데요. 그 말 들을 때 마다 너무 섭섭해서 "딸들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데요. 그리고 보면 저도 그랬던 거예요.
저희 아버지는 정말 소처럼 일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랑 만나거나 그런 게 없었어요. 술도 못 드시고.... 담배는 피우셨어요. 화내실 줄도 모르셨어요. 자라면서 아버지가 꾸짖거나 잔소리하신 적이 없었을 정도니까요. 때리신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 윤지강 저자(책 '송아지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며 … ]
■■ 아버지가 어떤일을 하셨고, 어떻게 사셨는지?
큰 아버지가 훈장이셨어요. 아버지가 결혼 전에 생계를 책임지신 거죠. 큰 아버지는 책만 읽지 일은 안하신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는 그걸 보고 글공부를 해서는 자식들 못 먹여 살리겠구나 생각한 거죠.
할머니가 "네가 제일 건강하니까 학교 가지 말고 돈을 벌어라"고 했다는 군요. 그때부터 아버지는 돈을 버신 거고, 생활을 책임지신 거죠.
엄마랑 결혼해서 시골 봉양에 사셨는데, 자식들 공부를 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하셨어요. 근데 학교를 가려면 1시간 걸어가야 하니까, 읍내로 나오셔서 소 잡는 일도 하고, 이후로는 동대문에 옷을 띄어다가 옷 장사를 하신 거죠.
아버지는 옷 장사를 하면서 장부정리도 잘 하셨고, 운영을 잘 하셨는데, 분명 글도 모르시는 분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봤더니 ‘"햇님은 만원, 달님은 천원, 별님은 십원...." 이런 형식으로 장부정리를 하셨던 겁니다.
아버지는 술도 안 드시지, 멋을 부리지도 않으시지, 자신을 위해서 뭘 했다는 기억은 단 한 가지도 없어요. 큰 오빠가 그러더군요.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당신 넓적다리라도 내어주실 분이야"라고 하시는데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는 중에 아버지가 저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이 있는데 "여자니까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된다"라고 한 거죠. 그렇다고 남녀차별주의자는 아니었어요. 자라면서 남녀차별을 받은 것은 없어요. 큰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셨거든요.
■■ 아버지가 이랬으면 좋았다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아버지가 좀 배운 사람이어서 내가 성적이 떨어지면 "너 성적이 이게 뭐야" 하면서 종아리 때리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었어요.
만날 책만 읽으니까 이상주의자가 되었던 거죠. 귀한 집 딸은 ‘너 9시까지 들어와야 돼’ 그러는데, 시골에서 그런 규제가 없잖아요. 저로서는 그런 규제가 너무 그리운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규제를 만들었었어요. "9시까지는 꼭 집에 들어가야지"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런 아버지를 원했는데, 그때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아무것도 잔소리가 없으셨어요, 묵묵히 일하시고, 오셔서 밥 드시고 또 나가서 일하시고 그랬죠.
■■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된 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셨는데, 그 아름다운 인간성, 소중한 인간 그 자체, 맑은 샘물 같은 그런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어느 잣대에 비추어서 아버지를 안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더군요. 내가 평생 아버지를 위해서 무언가 해드린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옷을 사드리거나 하는 물질적인 것 말고, 엄마는 만나면 손도 잡아드리면서.... 근데 아버지한테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말예요.
초등학교 때는 차가운 도시락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밭에서 일하시다가도 엄마가 도시락 만들어 해주면, 자전거를 타고 오셨어요.
■■ 아버지가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운 적은 있었는지?
중학교 1학년 때,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너네 할아버지가 우산 가지고 오셨어. 빨리 현관에 가봐." 그러는 거예요. 가 봤더니 크게 웃으시면서 우산가지고 서 계신 거예요. 저는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 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버지니까. 근데 내 친구 눈에는 할아버지인 거예요. 근데, 아버지가 계신 현관까지 걸어가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아버지가 우산 가지고 온 것을 확 뺏어서 들어왔어요.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에게 말을 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할아버지니까 싫은 거예요. (눈가에는 눈물이)
물론 지금은 너무 후회해요. 지금 아버지 살아계시면, 무엇을 해 드릴까 생각해보니까 ‘그거.... 호랑이’, 모시고 가서 호랑이 보여드리고, 아버지 손도 잡아드리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동생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울컥 하거든요. 그 만큼 아버지는 우리에게 소중한 분이셨어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아요.
■■ 아버지가 좋아했던 음식은? (송아지 아버지에 쓰르메 이야기가 나와서)
아버지는 드리면 드리는 대로 짜다 말다 말 한 마디 없이 그렇게 드셨어요. 돌아가실 때 '쓰르메(오징어 말린 거, 충청도 사투리)'를 드시고 싶다고 그때 찾으셔서 생각이 많이 나고요.
옛날에는 밥에다 감자를 많이 섞었잖아요. 여름에 일하다가 들어오시면, 덥고 목도 깔깔 하잖아요. 감자를 으깨서 찬물을 말아서 아버지가 드셨거든요. 그래서인지 저도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나 봐요. 지금도 말이죠. 고소하고 맛있어요.
■■ '아버지' 하면 생각나는 것 있으면 말해 주세요.
아버지는 정말 소처럼 일만 하시다 돌아가신 분이었는데, 가시기 한 달 전까지도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평생 아버지가 농사지은 쌀로 지은 밥을 먹었습니다. 새벽에 연탄불 갈고, 물을 끓이는 일이 모두 아버지의 몫이었어요. 참 충실하고 착한 분이었는데도 제가 아버지를 경원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지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족스럽지 못했고, 평생 그 한풀이를 하셨지요.
제 머릿속에 '아버지가 무식하다'라고 입력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지요. 저는 매우 예민하고 감성적인 소녀였기 때문에 자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로 매우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도 사실 아버지를 사랑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지요. 워낙 자존심이 강해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울증을 앓지 않으셨나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미워했던 아버지의 존재가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깨달았지만 자존심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셨던 것이죠. 아버지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생각해요. 만약 엄마가 좀더 인내하고 자신의 한을 내면에서만 삭일 줄 아는 여성이었다면 자녀들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희 집 오빠와 남동생은 마음이 너무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오히려 자신들은 무서운 아버지가 되었죠. 제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한 사람이 오빠였는데, 제 조카들도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모두 방으로 들어가 숨었죠.
아버지도 사실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위상을 자녀들에게 만들어 주는 것은 어머니의 지혜로움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부터 김용전작가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아버지 " <아버지를 생각 한다> 인터뷰 시작하며" 주관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두번째 진행으로 개그맨 이홍렬님과 함께 했으며, 계속해서 인터뷰는 진행 될 예정이다.
만약 인터뷰에 참여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 첫 번째, 거울을 보면 그 곳에 아버지가 서 계신다 - 손병목 소장 인터뷰
- 두 번째, ‘그리운 아버지, 살아만 계셨더라면....’ - 이홍렬 인터뷰
- 세 번째,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 전용석 인터뷰
- 네 번째, 자식은 결국 떠나 보내야 하는 존재다 - 강학중 소장 인터뷰
- 다섯 번째, 아버지는 가족에게 보이지는 않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 - 정철상교수
- 여섯 번째, 부모를 '그남자, 그여자'로 볼 때 정서적으로 독립한다 - 김어준 인터뷰
- 일곱 번째, 내 몸속에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 - 구본형 소장 인터뷰
- 여덟 번째, '아버지의 자리' 시대가 변해도 그 자리에 있어야 - 국민 아버지 최불암
'혜민아빠 인터뷰이야기 > 아버지를 생각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날 때는 언제인지? (1) | 2009/07/29 |
|---|---|
| 이외수, 아버지의 역할은 자식을 인간답게 키우는 것 (6) | 2009/03/02 |
| 아버지 돌아가신 후 3년을 고통으로 지내다 - 윤지강 저자 인터뷰 (2) | 2009/02/11 |
| '아버지의 자리' 시대가 변해도 그 자리에 있어야 - 국민 아버지 최불암 (6) | 2009/02/06 |
| 내 몸속에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 - 구본형 소장 인터뷰 (2) | 2009/01/21 |
| 부모를 '그남자, 그여자'로 볼 때 정서적으로 독립한다 - 김어준 인터뷰 (13) | 2009/01/19 |
blog comments powered by Disq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