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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생각한다> 란 주제를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곱 번째 인터뷰는 '변형전문가 구본형소장‘ 이다.

지난 16일 엄청난 눈이 내린 날, 세검정 북 카페에서 구본형 소장을 만났다. 직장인이라면 만나고 싶은 1순위 일거라 생각된다.



Q. 가족과 얼마나 시간을 가지는지?

 일주일에 3일 정도는 강연을 하고, 2일 정도는 제멋대로 생활하고, 짧은 여행도 가고, 나머지 2일은 가족들과 같이 보내고 있어요. 대략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좋은 사람들과(제자들) 함께 술을 먹는 거 같아요.
 딸 아이 나이가 들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큰 딸아이(의사 레지턴트)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집에 오고 있어요. 아마 지금이 제일 바쁠 때죠. 거의 볼 시간이 없어요. 둘째아이(대학생)는 시간이 넉넉할지 모르지만, 자기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저녁때는 가끔  보거나, 아침시간에는  같이 밥을 먹으니까 그때 보는 거죠. 요즈음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는 없죠.

 예전엔 좋은 방법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딸아이가 필요 시 차로 어딘가를 태워달라고 할 때 태워주면서 좁은 차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죠. 보통 때는 자기들이 알아서 가는데, 아침에 일찍 가야 하는 경우나 승용차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경우는 태워주곤 하는데, 차 안은 작은 공간이라서 이 얘기 저 얘기 하게 되요. 딸 아이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친구 이름도 알게 되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차로 데려다 주면서 30분 내지, 1시간 정도 하는데 아주 요긴하게 대화를 나누게 되죠.





Q. 자녀를 키우면서 아버지로서 힘들었던 점, 즐거웠던 점은?

 두 딸아이가 성격이 좀 달라요. 나이가 차이가 나는 것도 있지만, 둘이서 공감 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자기 고민을 깊게 이야기하거나 하는 것은 동생이니까 가끔 언니에게 물어보곤 하는 것 같은데, 둘의 대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당면의 과제가 조금씩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큰 아이는 생각하는 게 단순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둘째 아이는 절 닮았는데 복잡해요. 복잡한 이야기를 하면 애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전 이해가 되요. 근데,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둘째 하고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살다보면 자기성격을 알거든요. 딸아이 성격에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자꾸 맘에 걸려요. 내가 저것 때문에 평생 멍이 든 것이 많은데,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조언해 주는데 잘 들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그래요.
 좋은 이야기를 자꾸 해 주어야 하는데, 잔소리만 하니.... 자꾸 반성하게 되죠. 자꾸 보이니까 말하게 되는데 말이죠. 제가 볼 때 단점은, 내향적인데 넓게 사귀지 않고, 몇 사람한데 집착하는 경우가 있죠. 사회성은 떨어지는 거죠.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를 많이 받을도 수 있거든요. 그런 게 자주 보이는데 말이죠. 그런 점 때문에 자꾸 잔소리가 심해지죠.
 아내하고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저보다 현실적이에요. 저는 좀 이상주의인데 말이죠. 이상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겠는데, 현실을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현실이 따로 정해져 있나, 내가 살고 싶은 데로 살면 그게 이야기처럼 사는 거지, 난 이야기처럼 살고 싶다. 그러니까 가끔가다 안 맞는 부분이 있어요.





Q.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이럴 때 행복하구나 생각할 때는?

평소에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아닌 건데, 내가 가족들과 함께 웃을 수 있구나,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구나. 큰애가 1주일에 한번밖에 못 오는데, 그때 오면 같이 장도 보러가요. 좋아하는 것도 사곤 하는데, 그런 게 가족이구나 싶고, 딸아이가 좋아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진심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즐거운 거구나 많이 생각해요. 그런 거 없다고 하면 삭막하겠죠. 계산해야 하고 말이죠.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구나 싶더군요.


Q. 자녀들에게 이런 아빠가 되고자 하는 것이 있는지?(좋은아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중에 아버지를 기억할 때, 세상 사람들하고 보는 기준이 다를 겁니다. 워낙 가까운데서 어렸을 때부터, 누적적으로 볼 거 못 볼 거 다보면서 자란 것이 가족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볼 거만 본거와는 다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구나,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겠구나"라고 하는 메시지를 줄 수 있으면 좋은 아버지인 것 같아요.

 첫째 아이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고, 꿈을 향해 잘 가고 있어요. 힘들고 피곤한 길이지만 자기가 선택한 길이라서인지 잘하고 있어요. 둘째 아이는 아직 대학생이라 자기 것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탐색하고 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빨리 취업만을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대학을 취업하기 위한 장으로 삼지 마라. 그건 적절한 고민이 아니다. 젊은 사람은 오히려 방황도 해야 하는데, 먹고 사는 일 때문에 헤매지 말고, 내가 평생 어떻게 살 건지, 뭐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살아라. 이것저것 만나는 대로 나하고 어울리는 건지, 이런 시간을 보내봐라. 그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것을 말로 하는 것 보다, 자기 아버지가 생긴 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구나, 이런 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생각을 하죠. 그 부분은 만족스럽죠.


Q. 아버지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있지만,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 후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어요. 한달 정도 누워있었는데, 당시 할머니께서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돌봤기 때문에 살아나셨죠.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발을 하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모시를 입었었죠. 그 모시옷을 입고 어디를 가셨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저보고 따라가라 했어요.(당시 중학교 1학년 때, 형제는 2남 2녀 중에 막내)
 아버지 하고 혜화동거리 어딘가를, 아마 저희 이모 집을 간 거 같아요. 그때 그 장면이 왠지 기억이 뚜렷해요. 아주 생생하게 말이죠. 뭔가 약해진 아버지를 본거 같고, 생각보다 잘 걸으셨고, 지금의 제 나이쯤 되었을 텐데, 그때 생각이 참 많이 나요. 아버지의 진실한 뒷모습을 봤던 거라고 할 수 있죠.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는데, 한번도 성공한 이 없어요.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누나들은 할머니가 전라도 광주에서 키웠고, 당시 6.25가 나서 서울에 살다가 피난으로 해남까지 내려갔어요. 그러다가 올라오는 과정에서 할머니는 광주에서 정착을 했고, 막내라서 아버지를 따라 서울 등을 돌아다니게 되었죠. 집안 식구들도 다 흩어지고, 나만 막내라 아버지를 쫓아다닌 거죠.
부산에서도 살고, 서울에서도 살다보니 초등학교를 4번 다녔어요. 아버지는 지금 안계시죠. 20년 전에(87년도에) 돌아가셨어요.




Q.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잘 생겼고, 독립운동을 좀 하다 옥고도 치렀고, 공무원을 할 때가 제일 안정적이었는데, 별로 맘에 안 드셨는지 그만두시고 사업을 하셨는데,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요. 부드러운 분이었다는 생각을 많이 들어요. 별로 화낸 것을 본적이 없었어요. 술은 아주 좋아하셨고, 내가 보기에는 좋은 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좋은 아버지였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좀 무능력한 아버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인데, 다들 가난했기 때문에 학교에 갔다가 등록금을 못 내면, 집으로 보내요. 선생님들이 집에 좀 가봐라. 그래서 어느 날 집에 가 보니까 누나도 와 있더라구요.(웃음) 누나와 단둘이 이야기 했던 것이 있는데, 그게 두고두고  생각이 나더군요. "야 우리 집에서 네가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는데, 너 앞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 왜냐하면, 네 속에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겁이 나가지고 "이렇게 살면 나도 내 애가 이렇게 학교에서 쫓겨 나오면 어떡하나" 어린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Q.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날 만나면 인상이 좋다고 해요. 그게 살아온 것이 반영이 된 것일 수 있지만, 물려받은 것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에게 나타난 몇 가지 특징들이 아버지에게서 보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람에 관해서는 가능하다면 포용적으로 대하는 편인데, 그 분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내향적이기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조그만 일 가지고 대단히 많이 시달리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마음은 아프지만 (그렇게 한 사람도)그럴만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에 꽤 익숙해진 것 같아요.





Q. 아버지가 되고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 있는지? (원망or보고픔)

 많은 시간을 갖지 못했지만, 아버지를 오해해서 관계가 나쁘거나 그런 것이 없어요. 경제적 면에서는 아버지가 무능력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가족들을 위해서 악착같아야 되고, 자기 것도 챙기고, 그래야 하는데, 남 좋은 일을 시켰어요. 가족들을 고생하게 만들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누나가 저보다는 더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위 등록금 때문에 집으로 가게 된일) 당시 쫓겨 오는 것은 창피했지만  약간 재미있기도 했어요.
 가난 했지만 가난이 심각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했고, 그럴 수 있는 거지 뭐 그랬고,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걸 가지고 특별히 부끄러워하거나 하는 것은 없었어요. 그냥, 가난했구나.(웃음)

 근데, 저는 이상하게도 가난이라는 것이 꽤 낭만적인 거라 생각해요. 아마 그래서 이상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나 봐요.




Q.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렵다. 직장 다니는 분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격려 한마디?

 우리가 사는 모델을 좀 바꾸어 할 필요가 있어요. 나이 마흔 정도 넘으면 거취를 대략 정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공무원 같은 경우는 그냥 난 60까지 가는 거로 생각하고 있고, 회사 같은 조직에서는 위험을 느끼지만 정작 그 대상이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죠.
 근데, 옛날 같으면 60까지 다녔다하면, 그럼 여생은 벌어놓은 것 가지고 살면 살 수 있는 모델이었는데 지금은 안 그렇거든요. 요즘 평균수명이 80인데, 앞으로 제 나이쯤 되면 90정도에서 100살까지 살 텐데, 60부터 보더라도 나머지 40년을 벌어 놓은 것 가지고 살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모델인 듯 해요. 결국 죽을 때까지 잘 살려면, "내 생애 은퇴는 없다. 죽을 때까지 현직이다"라는 이 모델이 가장 적합한 모델이죠.
 또 하나는 회사에서 있으라면 있겠고, 나가라면 나가면 되는 거지. 나가서도 나 혼자 살 수 있다. 이런 독립적인 모델이죠.
 최소한 이 두개를 갖추려면, 어떤 분야 하나에서는 전문성을 살려야 하겠죠. 이런 것은 회사를 다니면서 개발 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어떤 부서에서 일하게 되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조율해가면서 '이거다 하고 싶은 거' 있다면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여해서 그 일을 아주 잘하는 거죠. 직업 포트폴리오를 몇 개 그려서 내가 잘하고,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에 많이 투자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회사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중요하지만 나하고 적성이 안 맞는 것은 다른 사람만큼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 보다 더 이상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중요하지는 않는데, 내게 적성이 잘 맞는 거에 시간을 들여서 개발하다보면 나중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현업을 가지고, 모두 다 적성에 맞는다, 안 맞는다 결정할 것이 아니라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간단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내가 아주 잘하는 것과, 현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에 대해서는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2~3년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 그 분야는 눈에 보여요. 회사입장에서는 이 사람한테, 집중적으로 그 일을 떼어서 전담을 시킬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지죠. 그럼 그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가지게 되는 거죠. 나와서라도  얼마든지 아웃소싱 할 수 있는 거고, 그렇게 되면 평생 모델이 되는 거죠.
 이렇게 모델을 바꿔가면서 준비하면, 갑자기 회사를 나오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런 충격 속으로는 안 들어갈 거라 봅니다. 굉장히 좋은 회사에서 나오게 되는 경우, 그 때가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거예요. 거기선 업적도 되고, 대단한 사람처럼 느꼈는데, 나와 보니 꽝이에요.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 내 능력이라기보다는 조직의 힘이었구나라고 나중에 생각하게 되는 거죠.


Q. 좋은 아빠가 되는 모델링은?


 '좋은 아빠냐 좋은 남편이냐' 보다는 자신이 좋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으면,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일을 즐기면서 사는 것을 보여주면, 좋은 남편이 될 수 있고, 좋은 아빠도 된다고 봐요. 삶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더 있겠느냐, 내가 뭔가 잘 살아야지, 도움도 될 수 있는 거고, 본보기가 될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잘산다는 거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 거죠.

 하여튼 저는 직장에서 20년을 하도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나올 때 결심한 게 있어요. 더 이상 시키는 일만 해서는 살지 않을 거다. 두 번 째는 나 자신에게 자유 시간을 많이 주겠다. 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라 마음대로 의미나 그런 것을 따지지 말고, 여행가고 싶으면 가고, 강연은 들어오는 대로 다하지 말라. 주당 3개정도만 하면, 먹고 살 수 있다. 군색하지 않게 살 수 있다면, 일하는 거고, 나머지는 책도 쓰고, 책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렇게 자유를 나에게 많이 주어보자. 이런 것이 유일한 제 기준이었던 것이죠. 비교적 만족스러워요.
 
 
--  인터뷰 참여 해주신 구본형소장님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이번 12월 부터 김용전작가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아버지 " <아버지를 생각 한다> 인터뷰 시작하며"  주관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두번째 진행으로 개그맨 이홍렬님과 함께 했으며, 계속해서 인터뷰는 진행 될 예정이다.
만약 인터뷰에 참여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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