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가족내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엇일까?'라는 제목으로 올려놓은 글을 보고 인터뷰 요청을 했으며, 불쌍한 한국의 아버지와 본인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이야기가 심금을 울렸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부끄러워 아버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아버지 이야기를 공개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불쌍한 한국의 아버지
어머니와 달리 소외받는 존재 "아버지"
집안에선 귄위 세우지만, 사회에선 찬밥
신경 쇠약으로 정신병원까지 입원한 아버지
아버지는 가족에게 <그림자>와 같은 존재
혹자는 한국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한다. 사회에서는 뼈 빠지도록 일하지만 사실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집안에서는 외부에서 받는 차가운 사정을 차마 말 못한다. 오히려 큰소리 치며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권위를 띄는 경우가 많다.
정철상교수의 <아버지 인터뷰> 속으로 들어가 보자.
Q. 하시는 일은 어떤 것인지? 가족 소개 좀 해주세요?
대학교수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사회생활 진출을 위한 진로, 직업, 사회교육을 위한 실용수업을 맡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커리어코치라고도 불립니다. 경력관리 전문가 또는 인재개발전문가라고 불립니다. 기업 강의를 포함해서 전국적으로 월평균 20여 회 강연을 나갑니다. 그 외에는 주로 글을 쓰고, 책을 집필합니다. 참, 블로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철상의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라는 블로그입니다.
우리 가족은 생기발랄한 아내와 8살 된 멋쟁이 준영 왕자님과 4살 된 유진 공주님 이렇게 네 가족이 단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Q. 가족과 얼마나 같이 보내시나요?.
일하는 시간외에는 거의 가족과 같이 지냅니다. 직장인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간혹 연이은 지방강연으로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많이 있는 편입니다. 방학 때는 시간이 많아서 거의 매일 아이들을 데려다 줍니다.
Q. 가족과 살면서 이럴 때 행복하구나 했던 적이 있나요?
너무 많은 순간들이 있죠. 신혼여행도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갔던 여행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아니어도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소리만 들어도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때로 너무 큰 축복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앗, 물론 요 녀석들 속 썩일 때는 속상하기도 합니다.
Q. 아들에게 이런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좋은 부모)
아버지는 아주 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들에게는 엄하게 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매를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가르치다 보니 그게 생각만큼 안 되더군요.
아직까지 선과 악의 기준이나 올바름과 그름의 기준이 서 있질 못합니다. 그래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에는 엄하게 꾸지람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시간에는 친한 친구처럼 편하게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기까지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Q. 자녀를 키우면서 아버지가 된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된 후 아버지를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과 믿음을 줘야합니다. 게다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교육시킨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 않음을 많이 느낍니다. 아버지가 되면서 아버지가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님을 느낍니다. 아버지 역시 평생을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Q. 자녀를 키우면서 아버지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그리고 가장 기뻤던 적은?
아이들 다치는 것이 너무 속상합니다. 사실 제 아버지가 왜 그토록 우리가 다치는 것을 싫어하는지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되고 나니 아이들 아픈 것이 제일 속상합니다. 아이들이 폐렴이나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제일 안쓰러웠습니다. 한번은 둘째 공주님이 아파트에서 던진 담배꽁초로 화상을 입었을 때 많이 속상했습니다.
(관련기사 : 담배꽁초에 화상 입은 딸 아이 )
Q. '내가 아버지구나’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던 적은 언제인가?
아주 절실하게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내 품 안에 안겨서 잠들어 있을 때 그러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 질문을 들으니 아직까지 온전하게 아버지로서의 몫을 다하고 있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적이 있습니다. 주말 부부를 할 때였습니다. 가족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눈물바다가 되곤 했습니다. 아내와 둘이 있을 때도 제가 울곤 했죠. 그런데 아이가 있으니 아이가 대성통곡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모든 가족이 헤어지는 기차역에서 눈물바다를 만들곤 했죠. 로베르트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보면 아버지는 총살을 당하러 가는 장면에서도 어린 아들에게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아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열차 차창 밖에서 온갖 몸 개그를 하며 아이를 달랬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웃더군요. 그래서 계속 웃겨줬죠. 그런데 사실은 저는 울고 있었거든요. 그 때 제가 아버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님은 원래 농사를 짓던 분이셨죠. 다만 본인은 한 번도 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일이 없으셨습니다. 대지주셨기에 일하시는 분들이 모두 다 해주셨죠. 게다가 종손으로 귀하게 자라셨기에 일이라는 것 자체를 잘 모르셨습니다. 사회로 나와서는 직업군인 생활을13년 하셨으나, 피치 못하게 월남전에서 제대를 하신 후에 제대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질 못하셨죠.
키가 182센티였을 정도로 큰 키에 호남형으로 호리호리하신 분이셨죠. 남성적인 분이셨으나 내면으로는 여리고 순하고 감성적인 부분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한편으로 연륜 만큼이나 사연도 많으신 분이셨죠.
우리 아버지를 통해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아버지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여러모로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관련기사: 희생 없이 아름다운 것을 얻을 수 없다!)
Q. 아들로서 아버지를 처음 이해하게 된 때는 언제쯤 인가요? 무슨 계기로?
(자식을 키우면서 아버지가 되고 있는데, 어떨 때 아버지 생각이?)
아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 무렵에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대학 2학년 때였습니다. 가난해서 등록금을 낼 형편이 못되었죠. 그 때 아버지가 직업군인을 권하더군요. 그리고 ‘선택은 네가 해라’라고 말씀하셨죠. 저에게 미안해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바로 그 자리에서 ‘군대를 가겠다’고 했었죠.
한 동안 떨어져 살았으나 요즘은 거의 매일 아버지를 봅니다. 떨어져 있을 때는 막걸리 마실 때가 생각나곤 했습니다. 제가 군대 다닐 때 늘 ‘이왕 술 마실 것, 막걸리를 마셔라. 그게 건강에 좋다.’라고 말씀하시곤 했거든요. 그래서 막걸리를 좋아했습니다. 마실 때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이 떠오르더라고요.
같이 있을 때는 맛있는 것 먹을 때 생각납니다. 특히 냉면이나 밀면을 좋아하시는데 면 종류 먹을 때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Q. 아버지를 사랑하신다고 말하신 적이 있는지? 포옹은?
(살면서 기억, 앞으로 하실 생각은?)
그러고 보니 사랑한다고 말 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군대 있을 때 아버지 생신을 맞아 그 말을 꼭 한 번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망설였는데, 그 때 '사랑한다'라는 말을 했는지 못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만일 했다고 하더라도 그 때 한 번 뿐이었겠죠.
포옹은 몇 번 해봤습니다. 하지만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그 횟수는 작지만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우산의 쇠창살이 제 눈에 꼽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실명을 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죠. 당시에 그 소식만 듣고도 마당으로 나와서 뒹구셨다고 어머니가 말해줬습니다. 그만큼 여리고 순하며 아들을 사랑해준 분이셨죠.
앞으로 꼭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안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Q. 아버지가 이렇게 사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면?
(좀 더 가정이 행복 할 수 있었고,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들로서의 생각)
아버지가 조금 더 좋은 직장에 다니셨더라면 하는 바람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랬더라면 어머니 고생도 줄고, 우리 가족도 형편이 더 나아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모든 인생의 역경을 이해합니다. 정말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해서 자괴감에 빠지곤 하셨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삶을 후회하시죠. 하지만 저는 그래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려고 온정스럽게 살아온 아버지를 그 모습 그대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저이고,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이니깐요
Q. 살면서 아버지에게 얻은 교훈이 있다면?
(가르침, 가정에서 교육 등)
아버지의 가르침은 정직과 성실이었습니다. 어디에서나 바로 서기 위해서는 항상 정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운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정직할 수 있는 상황 자체에 저를 몰고 가지 않으려고 늘 노력했습니다.
아직도 스스로는 제 자신을 게으른 부분이 많다고 질책합니다. 그러나 아내도 그렇고 부모님들도 그렇고 저를 아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성실하다고 인정해줍니다. 아마도 그렇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환경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Q. 아버지의 이런 점을 닮지 말아야지 하면서 어느덧 내가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이때 아버지의 아들이구나 싶은데, 저자님은 이런 경험 한적 있나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싫었던 적이 있습니다. 술 마시고 가족들에게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술을 먹더라도 실수하도록 마시지 않겠다. 화를 내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술 마시고는 거의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간혹 아내에게 화를 내곤 미안해합니다. 이럴 때 내가 아버지를 닮았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더라도, 어머니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거든요. 저 역시도 화를 내고 나면 언제든지 후회가 되더군요.
Q.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떤 것인지? 원망or보고픔
(일상 생활에서, 어떤 분은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축 쳐진 어깨입니다. 182나 되는 장신에 호리호리한 체격이라 양 어깨가 쳐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고 살아오신 듯한 느낌이 들어 측은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군대 입대를 한 후에 부모님이 처음으로 면회를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자신의 아이를 찾으려 두리번 두리번거렸죠. 하지만 모두 군복을 입은 상태라 누구누구인지 분간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먼저 아버지를 발견했습니다. 큰 키에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의 아버지를 단 번에 알아본 것이죠. 그런데 그 때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더 많이 빠진 머리에, 더 많아진 흰 머리에,더 많아진 주름을 보니…눈물이 나더군요. 눈물을 다 흘린 다음에 아버지에게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를 보면 ‘보이지 않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한국의 아버지들을 돌아본 기사가 있습니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기사: 가족내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
Q. “자식은 자식대로 부모에 대한 한을 가지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에 대한 한을 가진다” 라는 말을 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자식은 아버지가 좀 더 좋은 직업에, 좀 더 넉넉한 재산에, 좀 더 인격적으로 완성되고, 좀 더 좋은 환경에 자랐었으면 하는 등의 한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넉넉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한(미움)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정당하게부모님에게 요구하지 못한 말이나 권리에 대해서 아쉬워하죠.
반면에 부모는 우리 아이가 조금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좀 더 넉넉하게 살고, 좀 더 인격적으로 완성되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했으면 좋았을 텐데 등의 한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 더 해주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것이죠.
결국 부모님은 아이들을 위해서 한스러워하고, 자식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한스러워하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부모님의 사랑이 자식보다 훨씬 더 큰 사랑임을 알 수가 있죠.
Q. 아버지와 아들은 대부분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한다. 귀하의 경우는?
(만약 그랬다면 언제 무슨 계기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는가?)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보다는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말을 또박또박하게 끝맺음을 못할 때는 혼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앞에서는 농담을 잘 하면서도 아버지 앞에서는 쉽게 농담을 건네지 못하곤 했습니다.
Q. 한국의 아버지의 처한 현실, 어떻게 달리 해석 할 수 있을지? 지금의 아버지로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집안에서 사랑 받는 1순위의 존재가 아닙니다. 어머니가 1순위죠. 태생적으로 사람들은 어머님에 대한 사랑을 더 크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어머니 또한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제일 우선순위로 놓고 살아가죠.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사랑은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많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회에서도 그렇게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평범한 가장들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서 자괴감을 많이 느끼죠. 게다가 실직이나 사업실패까지 겪었다면 비참해지기까지 합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가족의 그림자’같은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신의 숙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놀려고 살아가려는 아버지는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든 가족들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죠. 다만 사회가 일하려고 하는 이 아버지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20, 30대의 실업도 심각하지만 집안의 가장인 40,50대의 실직은 아주 큰 충격이라고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렵다. 여자도 힘들겠지만 남자들, 특히 아버지는 더욱 심리적으로 힘들 것이다. 아버지들에게 격려가 되는 이야기를 한 가지만?
저는 아직 사랑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됨으로써 차츰 사랑을 알아나가는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희구하지만 결국 아버지라는 존재는 후 순위일 수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생득적 본능적 사랑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본능을 뛰어넘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국가와 사회의 미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을 책임질 가장은 아버지들입니다. 가정이 바로 서기위해서는 아버지의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자신만을 아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될 지라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나갈 몫이 바로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쳐진 어깨를 넓게 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바로 우리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번 인터뷰는 이번 12월 부터 김용전작가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아버지 " <아버지를 생각 한다> 인터뷰 시작하며" 주관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두번째 진행으로 개그맨 이홍렬님과 함께 했으며, 계속해서 인터뷰는 진행 될 예정이다.
만약 인터뷰에 참여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 첫번째, 거울을 보면 그 곳에 아버지가 서 계신다 - 손병목 소장 인터뷰
- 두번째, ‘그리운 아버지, 살아만 계셨더라면....’ - 이홍렬 인터뷰
- 세번째,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 전용석 인터뷰
- 네번째, 자식은 결국 떠나 보내야 하는 존재다 - 강학중 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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