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읽었던 <김홍신의 대발해>에 '독도' 를 언급한 부분이 있어 다시 봤다. 처음 읽었을 때는 쌍둥이 섬이라 불리었던 것과 발해시대에는 우산도라고 불리었다고 그냥 흘려 읽었다.
당시 독도는 신라땅이었다.
독도는 우리땅 가사 일부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대발해 책에서는 당시 일본에 첫 사신을 보내는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 6월에 우산국(于山國)이 항복하고 해마다 토산품을 바치게 되었다.>
이 책은 역사소설이다. 즉,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독도에 대한 설명부분 또한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했던 것이다.
발해는 696년에 세워졌다.
발해가 일본에 첫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한국사연표(동방미디어 刊, 2004)를 참고.
물론 이 자료는 발해고,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등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모든 문헌사료를 취합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자료이다.
<김홍신의 대발해> 역사소설에서 독도는 있었다.발해가 일본에 첫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한국사연표(동방미디어 刊, 2004)를 참고.
물론 이 자료는 발해고,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등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모든 문헌사료를 취합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자료이다.
이 책의 p.72에 보면,
"발해, 고인(高仁) 등을 일본에 보내어 통빙(通聘)하고자 하였으나 겨우 고제덕(高齊德) 등 8인만이 일본 조정에 도달"이란 기록이 있다.
이 때가 정묘(丁卯)년, 즉 727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 일은 조선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에 의해 쓰여진 발해고(勃海考)에 저술되어 있습니다. (참고:발해고/유득공 지음,
송기호 옮김/홍익출판사, 대발해10권 254페이지에 보면, 1차 자료 안에 '발해고'가 있고, 257페이지에 2차 자료에
표시되어 있다.)
"저기 섬이 보입니다."
뱃머리에 서 있던 사공이 소리쳤다. 과연 꿈인 듯 생시인 듯 가물가물 섬이 보였다. 뾰족한 두 개의 섬이 형제처럼 마주 보고 있었다. 쌍둥이 섬이었다.
"쉬었다 가야겠다. 배를 대라!"
지쳐 쓰러진 사공들을 데리고 더 전진할 수 없었다. 사신 일행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쌍둥이 섬이 가까워지자, 고인이 도사공 박천파에게 물었다.
"저 쌍둥이 섬은 신라 땅이냐?"
"그렇습니다. 신라 땅 우산도(독도)라 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섬입니다. 고기잡이 배들이 풍랑을 피해 잠시 쉬어 가는 곳입니다. 원래는 우산국에 속했으나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가 정복하여 신라 땅이 되었습니다."
"만경창파에 외롭게 홀로 있으면 얼마나 고독하겠느냐. 저렇게 쌍둥이처럼 동서로 나뉘어 마주보고 있으니 그나마 슬퍼 보이지 않는구나."
가 까이 다가가니 먼발치에서 본 것처럼 작은 섬이 아니었다. 우산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져 있고, 주변에 무수한 암초가 있는 화산도였다. 동도와 서도 사이에는 폭 4백 척은 족히 넘고 길이가 1천 척쯤 되는 수도가 있어 바다고기들이 유유자적하게 노닐었다.
"천하가 신비롭구나. 수백 리 떨어져 외롭고, 모진 바람과 풍랑이 휩쓸어 고독한 섬에 무슨 조화로 이리 어여쁜 꽃이 피고 새가 운다는 말이야. 어딘가 샘물이 있을지 모르니 찾아보거라."
역사가, 진실이 독도는 우리의 땅이라는 흔적이 살펴볼려고만 하면 곳곳에 많다. 이렇게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우리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옆나라에 행태에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독도는 우리땅임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