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108번을 치었던 적이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108번을 치게 되는 경우도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뜻으로 생각했으며, '제야의 종' 은 사찰에서 행해지는 불교적 풍습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근데 알고 보니 불교행사도 아니었고, 국가적 전통과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근데, 이런 제야의 종 타종식 행사가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행사라고 한다.
당시 대동아공영을 꿈꾸는 일제의 '의도' 가 투영된 행사라고 하며, 그런 행사가 계속 발전되어 와서 보신각에서 매년 진행하는 전통적인 행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거다.
"1928년 1월 1일, JODK로서는 처음 맞는 정초라 색다른 기획을 하고 싶었다. 마침 꾀꼬리를 키우는 사람이 있어서 이날 낮 12시를 기하여 꾀꼬리 울음소리를 들려주기로 했다. 아침 7시에 자동차로 꾀꼬리 사육장에 도착하여 3마리를 담요에 정중히 산 후 방송국으로 가져왔다. 기획자들의 심산으로는 담요로 빛을 가리고 있다가 갑자기 담요를 치우면 꾀꼬리들이 아침인 줄 알고 울어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낮 11시 30분 담요에 싸여 있는 꾀꼬리를 스튜디오에 안고 들어와서 '지금부터 꾀꼬리의 올해 첫 울음소리를 방송해드리겠습니다'하고 아나운서 멘트를 넣자마자 마이크 앞에서 담요를 제쳐 꾀꼬리를 밝은 세상에 내 놓았다. 아뿔사! 꾀꼬리는 묵묵부답,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낭패를 당한 직원들은 서둘러 휘파람도 불어보고 바이올린으로 흘려 보아도 끝내 예고 시간인 30분을 넘기고 말았다. 아나운서는 37분 경과 후 하는 수 없이 사과방송을 내고 꾀꼬리의 울음소리는 단념하고 말았다.
다음해 1929년 1월 1일에는 그래서 남산 기슭의 KBS-TV 옛 국사 자리에 있던 일본 절 본원사에서 범종을 빌려와 아예 제야의 종을 쳤다. 스튜디오에서 자정이 되자 10초에 한 번씩 종을 쳤으니 방송국 전체가 얼마나 울렸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신각 '제야의 종' 은 단지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말하고 있는 책은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제야의 종' 타종에 본원사 종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1930년 새해에는 일본 도쿄의 칸논도에서 직접 종소리를 중계했는가 하면, 경부 봉덕사에 있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나 개성 남대문에 걸려 있던 연복사종도 동원했다. 새해 벽두만 되면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일 간에 종소리 '이원 생중계'가 이어진 것이다. 일제가 '대동아공영권' 을 주창하던 시기,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이를 가리켜 '흥아의 소리'라고까지 적고 있다. 애석하게도 제야의 종 타종식은 일제의 나팔수 구실을 했던 경성방송국에 의해 시작했다. (p152)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식은 왜 33번씩 종을 치는가?
처음에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가 33인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려 33번을 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란다.
예전에는 시계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새벽 4시에 33번 타종해 사대문을 열고, 일과가 끝나는 밤 10시에 28번 타종해 성문을 닫았다고 한다. 33번 치는 것에 연유되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외, 33번이라는 의미를 백성들의 건강과 무병장수 한다고 해서 타종식을 했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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