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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웠던 독립문은 '나라의 독립을 기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말해 나라를 다시 찾고자 건립했다는 건데, 책에서는 건립 취지가 다르며 역사적인 의미와 다르게 재조명이 되어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며 관련해서 '독립문 진실' 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독립문에 어떻게 적혀있나 현장을 방문해봤고, 책과 뉴스 자료를 찾아봤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독립문에 초기 건립 의도는 "청에서 독립해 일본에 사대한다" 였다고 한다. 결국 청에서 벗어나 일본에 종속 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일제 세력에 대한 자주독립" 이라는 것으로 퇴색되어서 지금까지 전달해 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독립문역에는 독립공원이 있으며 그곳에는 독립문이 자리잡고 있다.
독립공원에 주요 건물로는 독립관과 독립문, 영은문 기초, 송재 서재필선생 상, 3.1독립선언기념탑 등등 있다.
3.1독립선언기념탑은 독립선언문이 새겨져 있으며, 독립관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위패를 봉안해두고 있는 곳이다.


독립문역에 내려서 살펴본 독립공원과 그곳에 있는 독립문을 촬영했다.


지금 독립문에는 어디에도 그런 일본에 사대한다는 말은 없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독립공원에 위치한 '독립문' 앞에 새겨진 내용이다. 자주독립을 결의하기 위해서 세워진 곳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독립문은 독립협회가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하여 중국사진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기념 석조물이다. 독립문을 세우기 위해 주춧돌을 놓던 정초식은 1896년 11월 서대문 밖 영은문 터에서 5천명 내외의 관민과 학생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히 행해졌다. 독립문은 현재의 위치에서 남동쪽으로 7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979년 금화터널 공사 때문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네이버백과사전에 '독립문' 을 쳐 봤더니 나온 자료이다.
1963 년 1월 21일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 1896년(건양 1) 독립협회(獨立協會)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청(淸)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전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여 세웠다. 창건 당시의 면적 2,800㎡였으며, 총공사비는 당시 화폐로 3,825원이 소요되었다. 완공일은 1897년 11월 20일이다. 현재의 면적은 2,640㎡이다. - 출처:네이버백과사전



근데 이에 대해서 역사적 의미가 잘 못 되었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그 책은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이며, 그곳에서는 독립문은 일본의 종속되기 위해 청국으로부터 독립 한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있다.  (하단 내용 발췌)
당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청국의 전통적 종주국 지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조선의 독립 운운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독립협회 인사들도 청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정녕 조선을 위한 일이라는 일본의 생각을 별다는 비판없이 받아들였다. 이렇게 독립문의  '독립' 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종속되기 위해 청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사대의 상징을 헐고 '또 다른 사대의 상징'을 세운 셈이다. (p181)

네이버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독립문의 '진짜' 교훈> 이라는 내용을 볼 수 있다.
1895년, 일본이 민비를 살해하자, 이에 겁먹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하고(아관파천), 이어서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이 앞을 다투어 조선을 넘보던 1896년 7월2일, 중추원 외부의 미국인 고문으로 귀국한 필립 제이슨(서재필)과 정부대신 이완용 등은 독립 협회를 결성하고, 그 첫 사업으로서 '나라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문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위로는 왕실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독립문을 건설하는데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성금 모집 대열에 줄을 이었다. 이렇게하여 세워진 것이 지금의 독립문이다.

이처럼 독립문은 자주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종속에 대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 세워진 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문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돈을 후원한 인물도 이완용이며, 독립문 씌여진 '독립문' 이라는 한글과 한자도 모두 이완용이 썼다고 한다.  (하단 자료 참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 자료는  "월간말 1998년도 8월호(통권 146호), 1998. 8" 실린 "독립문 현판, 이완용이 썼다?" 라는 내용의 일부이다.


'독립문' 에 해당하는 관련 뉴스 자료이다. 상세 자료는 링크 참조
"교북동 큰길가에 독립문이 있습니다. 모양으로만 보면 불란서 파리에 있는 개선문과 비슷합니다. 이 문은 독립협회가 일어났을 때 서재필이란 이가 주창하여 세우게 된 것이랍니다. 그 위에 새겨있는 '독립문'이란 세 글자는 이완용이가 쓴 것이랍니다. 이완용이라는 다른 이완용이가 아니라 조선귀족 영수 후작각하올시다."  - 오마이 뉴스 <독립문 편액은 매국노 이완용 글씨>

‘을사오적()’의 한 명인 이완용은 1882년 증광별시에 급제하고 형조참판, 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독립문 현판을 쓰기도 한 ‘난사람’이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이 더 필요해 나라를 넘기는 데 앞장섰을까. -  동아일보 <1910년 이완용, 한일 병합안 강제가결>

그들이 말하는 독립은 대한의 자주독립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청나라의 종주권을 없애는 음모를 독립이라고 포장하여 말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 것이었다. 당시 모든 일본인들은, 일본이 조선에 독립문을 세워 주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한다. - 오마이뉴스 <역사에서 찾아본 이명박 당선인의 사부님들>




앞으로 지금의 독립공원은 서울시가 2009년 광복절 새모습 공개한다고 한다. 독립공원을 역사공원으로 바꾼다고 한다. 또한 독립문 내부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운동가 위패를 모신 독립관 등이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11만㎡)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한 재조성 계획을 확정했다.
독립공원 재조성계획에 따라 독립문 내부를 통과를 막고 있던 철제 울타리도 철거한다.
독립문에서 3.1운동기념탑과 서대문형무소로 이어지는 구간에는 역사적 사실 등을 벽에 기록한 ‘흔적의 길’이 생기고 주변에 수경관(연못), 분수 등이 조성된다. 시는 독립공원 재조성에 240억원을 투입, 내년 착공해 2009년 8월 광복절 이전에 정비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 내일신문 <독립문-서대문형무소 연계 역사공원으로>


독립문 관련 포스팅 자료들


- 위 자료는 관련 서적과 뉴스를 토대로 정리한 문서이며, 관련해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며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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