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 정공 14년에 공자는 그의 조국인 노나라를 잘 다스려보려고 벼슬길에 올랐던 일이 있었다. 관직 생활 10년에 그의 벼슬은 대사구에까지 올랐고, 노나라도 그의 영도 아래 제법 잘 되어 가는 듯 싶었다. 그러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귀족들이 건건사사에 반대를 하고 나서는 바람에 공자는 몇 번이고 충돌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야인으로 돌아와 버렸다.
노나라에서는 자신의 포부를 구현할 수 없음을 깨달은 공자는 1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위,조,송,진,채 등의 여러나라를 전전하며 자신의 의로운 사상을 만천하에 펴보려고 유세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공자가 이미 70고개를 넘어설 때의 일이었다.
공자는 가는 곳마다 핍박이 심하여, 그의 유세여행은 고생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정나라에 갔을 때에는 어쩌다가 제자들까지 잃어버려 오도 가도 못할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성곽 옆에 쭈그리고 앉아 굶주린 배를 움겨잡는 채 제자들이 찾아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스승을 잃어버린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공자를 찾기에 여념이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동서남북으로 부산스럽게 찾아 헤매어도 스승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제자의 한 사람인 자공이 공자를 찾아 헤매다가 지나가는 선비에게 이렇게 물었다.
'느는 지금 스승님을 찾고 있는 중인데, 혹시 이 부근에서 70객 노인이 지나가시는 것을 못 보셨습니까?
그러자 그 선비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얼굴은 성인군자 같았고, 그 옆모습은 고요(순 임금 때의 명재상)와 비슷하였고, 그 뒷모습은 자산(정나라의 명재상)과 흡사합디다. 그러나 그들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풀이 죽어 축 늘어져 있는 폼이 마치 상갓집 개와 같은 몰골입디다."
정비석의 "손자병법 2" 책에서 발췌 (121p~122p)
노나라에서는 자신의 포부를 구현할 수 없음을 깨달은 공자는 1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위,조,송,진,채 등의 여러나라를 전전하며 자신의 의로운 사상을 만천하에 펴보려고 유세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공자가 이미 70고개를 넘어설 때의 일이었다.
공자는 가는 곳마다 핍박이 심하여, 그의 유세여행은 고생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정나라에 갔을 때에는 어쩌다가 제자들까지 잃어버려 오도 가도 못할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성곽 옆에 쭈그리고 앉아 굶주린 배를 움겨잡는 채 제자들이 찾아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스승을 잃어버린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공자를 찾기에 여념이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동서남북으로 부산스럽게 찾아 헤매어도 스승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제자의 한 사람인 자공이 공자를 찾아 헤매다가 지나가는 선비에게 이렇게 물었다.
'느는 지금 스승님을 찾고 있는 중인데, 혹시 이 부근에서 70객 노인이 지나가시는 것을 못 보셨습니까?
그러자 그 선비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얼굴은 성인군자 같았고, 그 옆모습은 고요(순 임금 때의 명재상)와 비슷하였고, 그 뒷모습은 자산(정나라의 명재상)과 흡사합디다. 그러나 그들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풀이 죽어 축 늘어져 있는 폼이 마치 상갓집 개와 같은 몰골입디다."
정비석의 "손자병법 2" 책에서 발췌 (121p~122p)
아직 공자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 못하지만 이 책에서 손무는 20~30대 정도 된다고 한다. 매우 혼란 스러운 춘추전국시대에 같이 생존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상가지구 [喪家之狗]
상갓집 개라는 뜻으로, 수척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여기 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얻어 먹을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을 비유한 말.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곤서편(困誓篇)〉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말 공자(孔子)는 노(魯)나라 정공(定公) 때 대사구(大司寇:지금의 법무부 장관)를 맡았지만 왕족 삼환(三桓)에게 배척당해 노나라를 떠났다. 이후 공자는 십수 년 동안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어떤 군주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공자가 56세에 정(鄭)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자료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상갓집 개라는 뜻으로, 수척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여기 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얻어 먹을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을 비유한 말.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곤서편(困誓篇)〉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말 공자(孔子)는 노(魯)나라 정공(定公) 때 대사구(大司寇:지금의 법무부 장관)를 맡았지만 왕족 삼환(三桓)에게 배척당해 노나라를 떠났다. 이후 공자는 십수 년 동안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어떤 군주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공자가 56세에 정(鄭)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자료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공자의 대한 부분은 요즘 시대에 긍정적일수도 있고 때론 부정적인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나온 '손무'는 공자에 대한 생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 부분은 아래 내용을 살펴보면 알것이다.
손무가 보기에 공자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철두철미한 이상론자라고 규정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몇 해전에 손무가 진나라에 여행하느라 없었을 때 공자가 노나라 대사구의 자격으로 제나라에 왔던 일이 있었다. 그때 제나라 군주 경공이 공자에게,
공자의 말은 옳았다. 상하가 제각기 자기 분수를 충실하게 지켜 주기만 한다면 세상이 어지러워질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몇 해전에 손무가 진나라에 여행하느라 없었을 때 공자가 노나라 대사구의 자격으로 제나라에 왔던 일이 있었다. 그때 제나라 군주 경공이 공자에게,
"임글이 정치를 잘하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들었다.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을 잘하고, 아비가 아비 노릇을 잘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을 잘하면 되는 것이옵니다."
하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들었다.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을 잘하고, 아비가 아비 노릇을 잘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을 잘하면 되는 것이옵니다."
공자의 말은 옳았다. 상하가 제각기 자기 분수를 충실하게 지켜 주기만 한다면 세상이 어지러워질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공자의 말은 마치
손문의 생각은 이런 공자의 생각에 원칙적으로는 옳지만 결국 그 당시의 어지러운 시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풍년이 들게 하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
"풍년이 들려면 비가 알맞게 오고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야 합니다."
하는 대답과 무엇이 다르랴.
하는 질문에 대해
"풍년이 들려면 비가 알맞게 오고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야 합니다."
하는 대답과 무엇이 다르랴.
손문의 생각은 이런 공자의 생각에 원칙적으로는 옳지만 결국 그 당시의 어지러운 시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때론 이런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과거의 인물들을 하나씩 알게 된다.
오자서,공자,노자,백이와 숙제,백미,강태공 등등
이제 2편을 읽고 있다. 아직 4권까지는 많은 내용을 남았지만 삼국지와 읽을 때와 약간 다른 느낌을 들 수 있다. 삼국지의 내용은 다 아는 내용이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전쟁이나 인물 등을 중점적으로 읽었다.
이 책 손자병법은 삼국지보다는 700년 전 이야기지만 유사한 개념들이 많은 것 같고 이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차후 제갈공명이 인용을 했다는 이야기도 하게 될때는 감회가 새롭다.
이와 같은 책들은 현재에도 인용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필독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읽으면서 아하 이런 이야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요.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Reading (좋은 책 많이 읽는 비결) (4) | 2007/02/28 |
|---|---|
| 승리를 거두는 데도 네 가지 단계가 있다. (2) | 2007/02/22 |
| 상갓집 개라고 놀림을 당했던 공자 (0) | 2007/02/18 |
| 포토몬 인터넷 사진관은 검색 광고의 매력으로 무인도에서 배달한다고 한다. (4) | 2007/02/15 |
| 강태공,손자병법,삼국지 어느 시대의 이야기일까? (0) | 2007/02/14 |
| 웹 2.0 경제학? (0) | 2007/02/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