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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에서 당대의 석학으로 불리우던 방덕공이 붙인 애칭 ‘와룡’으로 더욱 유명한 제갈량이라고 유비의 형주 입성을 왜 몰랐겠는가. 더군다나 ‘관중과 악의’를 꿈꾸던 야심만만 젊은이 제갈량이 유비라는 ‘당대의 군웅’의 등장을 마냥 바라만 보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솔직히 말도 되지 않는다. 제갈량이 누구인가? 제갈현의 사망으로 아무런 인맥도 없이 홀로 동떨어진 형주에서 ‘백그라운드’에 대한 열망으로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방덕공의 집 앞에서 3-4일동안 눈 맞아가며 청원하여 제자가 되었으며, 당대의 석학으로 이름높은 방산민, 사마휘로부터 배움을 터득했으며, 유표와의 인맥을 위하여 재주는 있지만 박색인 ‘황월영’과 결혼가지 한 야심만만 젊은이가 아닌가 말이다

이는 순전히 ‘야심만만’ 제갈량이 가지는 생각일 뿐이었지, 수경선생 사마휘나 방덕공 등은 유비의 인물을 미리 알아보고는 서서라는 준재를 유비에게 임관을 시키는 등 유비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무던한 애를 쓴다. 제갈량이라고 사마휘가 언질을 주지 않았을까마는 제갈량은 유비의 그러한 ‘허무맹랑한 몽상가적 기질’이 싫었을 것이다. 본래가 이치에 합당하고, 사리를 분별하고, 계획 타당성을 따지는 ‘이과계열’ 제갈량과 허물어져가는 꿈을 좇으며 믿는 것이라고는 ‘중산정왕의 후예’라는 간판 하나이며, 무너지고 패하고 도망쳐도 ‘후한복고’를 위해 일어나고 일어나는 몽상가적 ‘문과계열’ 유비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무계획적 유비는 계획적 제갈량이 맞을 수 있지만 계획적 제갈량이 무계획적 유비랑 맞을 리가 없는 셈이다.

어쩌면 제갈량은 ‘관중과 악의’를 꿈꿨을지언정 모실만한 주군이 없던 그 상황에서 허무주의적으로 유비를 택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천하통일의 자질을 지닌 주군이 아님을 알고서도 말이다.

자료출처 : 나그네의 '삼국지' 쾌도난담

삼국지 10권째를 읽고 있다. 아직 제갈량은 여섯번째 기산으로 전쟁을 하러 갔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유비,관우,장비,조조,손권 이어서 제갈공명과 사마의는 싸움은 더 흥미롭다.
제갈공명과 사마의 각각 서로 다른 군신을 모시고 있는 신하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 이다.

둘의 비교는 또한 흥미롭다.

제갈공명이 유표에게 의지하고 있는 곤궁한 처지의 유비를 섬기기 시작한데 비해, 사마의는 한나라 최고의 권력자 조조를 섬기게 되었다.

마지못해 조조의 부하가 되었다는 것은 사마의의 성격이 무척 신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에서 사마의의 이런 성격은 두드러진다. 사마의는 성급하게 싸움에 임하기보다는 전쟁을 오래 끄는 지구전을 좋아했다. 좀처럼 싸움에 응하지 않는 사마의와, 어떻게 해서든 사마의를 빨리 싸움터로 이끌어 내려는 제갈공명의 모습은 무척 대조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까닭이 있다. 촉한에 비해 위나라는 땅도 넓고 인구도 많으며 군사력도 강하다. 더구나 제갈공명은 전쟁 이외에도 도맡아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도 과로가 원인이었다. 전쟁이 오래 갈수록 촉한이 불리해지기 때문에 제갈공명은 빨리 승패를 결정지으려 하지만 사마의는 그렇지 않다.


자 중달(仲達). 하내군(河內郡: 河南省) 온현(溫縣) 출생. 진왕조 건국 뒤에 고조선제(高祖宣帝)라고 추존되었으므로, 사마선왕(司馬宣王) 또는 진나라의 고조선제라고도 하였다. 처음에 조조(曹操)의 청으로 그의 부하가 되고,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 文帝)가 위나라를 세운 뒤에는 명제(明帝)·제왕(齊王) 등 3대 황제를 섬겼다. 그동안 대도독(大都督)이 되어, 위나라의 군사를 통솔하고 위나라와 진나라 유일의 권신이 되어, 그의 손자 사마 염(司馬炎) 때 제위를 빼앗아 진나라를 일으키는 터전을 닦았다.

주요한 업적은 조비의 유언을 받아 명제 및 제왕을 보좌하였을 뿐만 아니라, 삼국 정립의 위기에 처하여 외적을 물리친 일이다. 특히 촉한(蜀漢)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오장원(五丈原)에서 막아, 그의 의도를 꺾기도 하였다. 또 요동(遼東)을 정벌하여 요동태수 공손 연(公孫淵)을 멸망시키고, 요동을 위나라의 영토로 삼았다. 그 밖에 남방의 오(吳)나라에 대처하여 화이허강[淮河] 유역에 광대한 군둔전(軍屯田)을 설치하여 국방을 튼튼히 한 일도 큰 업적이다.



삼국지 - 전10권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민음사


제갈공명 - 전3권 세트
유재주 지음/돋을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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